윤동한(72) 한국콜마 회장이 지난 11일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윤 회장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신사옥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임직원 700여 명에게 ‘막말 영상’을 상영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습니다. 해당 영상에는 “아베는 문재인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있고, 우리나라도 곧 그 꼴이 날 것”이라는 등의 발언이 나왔습니다. 이에 여론이 한국콜마 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지자 윤 회장은 대국민 사과 자리를 마련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퇴로 윤 회장이 큰 타격을 받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윤 회장 일가족은 한국콜마의 지주회사인 한국콜마홀딩스 지분 45.92%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윤 회장의 지분은 28.18%에 달합니다. 그의 아들은 한국콜마홀딩스 총괄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윤 회장이 일선에서 사퇴한다고 해도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경로는 많습니다. 그동안 되풀이된 재벌가 임원들의 무늬만 사과, 보여주기식 사퇴가 될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재벌가 임원에게 사퇴는 사과와 반성이 아닌 ‘휴식기’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6월 조현민(36) 전 대한항공 전무는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습니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주사회사, 정석기업은 해당 그룹 내 부동산 자산의 임대와 관리를 담당하는 계열사입니다. 조 전무의 복귀는 그가 지난해 4월 회의 자리에서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물컵을 집어 던진 사건으로 사퇴한 지 불과 14개월 만입니다.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사퇴한 그의 언니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에 대해서도 최근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퇴로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지 역시 의문입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회장님의 사퇴로 얻을 것은 없습니다. 한국콜마 직원들은 윤 회장이 상영을 지시한 영상을 사실상 반강제로 시청해야 했습니다. 윤 회장이 사퇴한다고 직원들이 경험한 불쾌감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 전무가 사퇴했다고 광고대행사 직원의 삶에서 ‘회의 중 물컵 맞은 경험’이 삭제되지는 않습니다. 논란 직후 한국콜마는 공식 사과문을 냈지만 여론은 더욱 들끓었습니다. 기업의 이미지 실추를 멈추기 위해 윤 회장이 사퇴를 발표했죠. 물의를 빚은 임원의 사퇴는 결국 기업 손실을 줄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조만간 복귀할 수도 있는 그 회사 말입니다.
윤 회장의 사퇴가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 1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콜마의 거래가격이 전날보다 3.14% 떨어졌습니다. 지난 9일에 이어 52주 신저가를 하루 만에 갈아치운 것입니다. SNS에서는 한국콜마가 제조하는 화장품 브랜드 명단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한국콜마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당분간 계속 확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윤 회장의 사례는 무수한 ‘겉치레 사퇴’를 끊어내는 단초가 될 수 있을까요. ‘회장님’의 진정한 사과를 받을 날은 언제가 될까요.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