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북한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연대성명을 보내 힘을 실었다. 시민들은 희망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광복절을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제140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가 열렸다. 집회에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1) 할머니도 함께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이렇게 더운 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깁시다”라고 말했다.
이날은 제7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기림의 날)이기도 하다. 지난 1991년 8월14일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증언한 김학순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시작돼 지난 2017년 12월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제1400차 집회와 기림의 날을 기념해 수요집회는 평소보다 큰 규모의 ‘세계연대집회’로 진행됐다. 일본,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호주 등 11개국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공동집회를 열었다. 이들 국가에서 보내온 연대 메시지가 담긴 영상도 상영됐다.
특히 북한에서 보내온 연대성명이 집회 참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북한의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 대책위원회’(조대위)는 지난 12일 정의연 측에 세계연대집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응원하는 연대성명을 전달했다. 윤미향 정의연 이사장을 통해 발표된 연대성명에서 조대위는 “일본이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성노예는 ‘자발적인 의사’라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모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정당한 사죄 및 배상 요구에도 일본은 경제침략의 칼을 빼 들었다”며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을 비판했다. 조대위는 “남한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인사들에게 굳은 연대의 의지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남북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반가움을 표했다.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 주예은(20·여)씨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 관계가 멀어졌는데, 오랜만에 화합의 순간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수영(26·여)씨는 “남북 정부 간 공식적 대화가 없는 상황에도 남북 교류가 계속되고 있어 희망적이다”라고 말했다.
정의연과 조대위는 지난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초국적 남북여성연대를 협의, 27년간 교류해왔다. 같은 해 12월9일 ‘일본의 전후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에서 남측 김학순 할머니와 북측 김영실 할머니가 만나 남북 피해자 최초 상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정의연과 조대위는 지난 2월28일에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해외 여성단체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수요집회는 지난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후 매주 수요일 일본군성노예제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며 27년간 이어졌다. 오늘 집회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주최했다. 최광기 정의연 활동가는 “수요시위가 긴 세월을 걸어온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외침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사진= 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