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등장한 ‘북한 컨셉’ 주점에 대해 북한이탈주민들이 분노를 토로했다. 북한 정권의 상징물을 안이하게 소비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서 한 주점이 ‘보라! 평양 술집이다!’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로 장식한 주점 외벽 모습이 SNS를 통해 퍼졌다. 이와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인공기와 초상화 등을 검토한 경찰 관계자는 “단순 게시만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6일 오전 점주가 논란이 된 장식물을 자진 철거하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정치적 상징물을 가볍게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점 외벽에는 북한 공산주의 선전물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함께 ‘안주 가공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키자’ ‘더 많은 술을 동무들에게’ 등의 문구가 쓰였다. 문구의 내용은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의 현실과 괴리가 크다. 세계 기아 지수(Global Hunger Index)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북한 주민 43.4%가 영양실조 상태다. 지난 7일 태풍 ‘링링’이 최대 곡창지대 황해도를 휩쓸며 식량 수급 위기를 더했다. 이에 ‘농담도 가려서 해야 한다’ ‘박정희 사진 걸어놓고 술 팔면 기분 좋겠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북한 정권의 피해자인 북한이탈주민들은 강한 유감을 표했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는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김정일은 수많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라며 “단순히 농담의 수단으로 활용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북한 정권의 세뇌 방식과 자유 탄압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인공기를 돈벌이에 이용하려던 점주, 특별한 조치 없이 상황을 종료하는 경찰 모두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지적했다. 탈북시민단체 미래한반도여성협회 활동가 A씨는 “아직도 북한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이 죽는다”며 “북한 체제 선전 도구를 술집 장식품으로 쓰려는 발상 자체가 비도덕이고 상식 밖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도 북한 정권이 ‘유머’로 소비되는 것을 우려했다. 임재천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북한 정권은 실존하는 공포”라며 “북한 공산주의 상징물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자극하기 때문에 동료 시민으로서 배려 없이 함부로 소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문화와 관련된 내용 없이 겉모습만 차용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주점에서 북한 요리, 음악, 생활상 등을 진지하게 소개하려는 시도가 보였다면 오히려 문화교류 사례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성주 인턴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