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장사리’ 몰랐던 역사 속 한 장면을 보고 싶다면

[쿡리뷰] ‘장사리’ 몰랐던 역사 속 한 장면을 보고 싶다면

‘장사리’ 몰랐던 역사 속 한 장면을 보고 싶다면

기사승인 2019-09-20 06:00:00


길을 찾았다.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 김태훈)은 기존 전쟁 영화들이 빠진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현실성에 집중한다. 극단적인 선악의 대결 구도로 점철된 허구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몰두하지도, 인물이나 이념에 불필요한 감정이입을 하지도 않는다. 대신 과거를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칭찬받을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는 사실이 아쉽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장사상륙작전이 개시된 1950년 9월 14일 경북 영덕군 장사리 해변의 문산호로 첫 장면부터 곧바로 들어간다.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 계획된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두고 북한군의 이목을 돌리기 위해 펼쳐진 기밀 작전이다.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 2주의 짧은 훈련 기간을 거친 평균나이 17세의 772명의 학도병이 대부분인 상황. 태풍이 몰아치는 악천후와 북한군의 포격을 뚫고 이명준 대위(김명민)가 이끄는 게릴라부대는 하나둘 장사 해변에 상륙하기 시작한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실제 우리 역사에 있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장사상륙작전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작전의 필요성을 설명하거나, 이명준 대위의 의도를 설득하지도, 학도병들의 전투를 응원하지도 않는다. 장사상륙작전을 바라보는 국군의 태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미군의 입장, 작전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는 종군기자의 시선 등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학도병들 개개인의 캐릭터 역시 미리 설명해 감정을 이입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표정과 말, 행동을 먼저 보여주고 캐릭터를 받아들이게 한다. 덕분에 관객은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뺏기지 않고 영화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관습적인 스토리 없이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채우기 쉽지 않았던 걸까. 문제는 그 이후다. 학도병의 과거사와 그들의 관계, 생각 등이 영화의 중후반부를 채우기 시작한다. 과한 음악이 친절하게 관객들을 인위적인 감동 속으로 안내한다. 그 과정에서 전반부에서 쌓아 올린 사실적인 색채가 조금씩 지워지고 뻔한 신파가 자리 잡는다.

김명민, 김인권, 곽시양을 비롯해 여러 배우들이 짐을 나눠서 지고 제 몫을 해낸다. 가슴 아픈 근현대사 영화 특유의 진지함과 엄숙함이 연기에서도 묻어난다. 학도병 기하륜 역할의 김성철이 눈에 띄고, 학도병 분대장 최성필 역할의 최민호는 아쉽다. 김성철이 광기 어린 연기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 최민호가 어색한 연기로 영화의 몰입에서 벗어나게 한다. 25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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