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죽했으면 암환자가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할까

[기자수첩] 오죽했으면 암환자가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할까

기사승인 2019-09-27 03:00:00

최근 황당한 논란이 있었다. 암환자들이 ‘펜벤다졸’ 성분의 동물용 구충제를 복용해 효과를 봤다는 내용이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며 품절현상까지 빚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죽하면 암환자가 동물용 구충제라는 희망을 선택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하면 황당하다고 말하기만도 어렵다.

앞서 미국의 한 남성은 온라인에 ‘강아지 구충제로 폐암을 완치했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렸다. 해당 남성은 2016년 말기 소세포 폐암으로 진단받으며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러던 중 한 수의사로부터 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하라는 제안을 받아 폐암을 완치했다는 것이다. 

영상에 따르면 조씨는 2016년 ‘말기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았고, 다음 해 1월 암세포가 간, 췌장, 위 등에 퍼져 3개월만 더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한 수의사가 그에게 ‘개 구충제를 복용하고 6주 만에 뇌암이 나은 환자 이야기’를 전하며 펜벤다졸 복용을 권했다. 이후 판벤다졸을 복용한 티펜스는 3개월 뒤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다고 한다.

펜벤다졸 성분의 구충제는 개·고양이의 회충·심이지장충·편충·촌충 및 지알지아 등 내부기생충 감염의 예방 및 치료제로 허가돼 있다. 

이에 대해 의약품허가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동물용 구충제의 주성분인 ‘펜벤다졸’이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진행되지 않은 물질이라며 절대 복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특히 말기 암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이기 때문에 부작용 발생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도 동물의약품을 취급하는 일부 약국에서는 해당 구충제의 품절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펜벤다졸 복용방법’이라며 ‘비타민 B·D·E 등을 함께 복용하는 것이 생체 흡수에 좋다’는 내용도 다수 올라오고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점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 좁게는 암환자나 암환자 가족들의 반응이다. “본인이 말기암이라고 생각해봐라 검증 안됐다고 안먹겠나” “말기 암환자에게 부작용 우려? 말기 암보다 더 큰 두려움, 고통...그보다 더한 부작용은 뭐지?” 등 암환자가 생존을 위해 어떤 것이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내용은 의료·제약의 불신이다. “항암제가 안전하고 효과가 있나? 제약사 로비에 의해 약으로 채택되었을 뿐 부작용과 효과 없음으로 수많은 암환자들이 죽었고 죽어나고 있다” “말기암환자 살리는 병원은 없다 돈만 빨아먹는 돈충이 의료집단이다” “암환자는 암으로 죽는 게 아니라 약 때문에 온몸의 장기들이 망가져 힘을 못 쓰고 돈만 병원에 갖다 바치고 돌아가신다” 등 제약사와 의료현장이 돈벌이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불신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너무 많다는 점은 암으로 의약계가 해야 될 노력을 보여준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근거 없는, 검증 안 된 정보가 한줄기 희망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치료법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조금이나마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높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검증되지 않은 약, 검증되지 않은 정보 등을 믿고 시도할 경우 가능성 있는 치료가 나와도 사용할 수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근거 없는 정보는 위험하다. 현재 온라인상에는 “개가 먹어 죽지 않는다면 사람한테 그리 엄청나게 해로운 것은 아니잖아” “펜벤다졸 복용시 흡수를 위해 꼭 비타민E(토코페롤)를 함께 섭취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에 비해 저렴하고 부작용도 거의 없어보입니다” “오일도 함께 사용하면 좋다고 합니다” 등 한줄기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암환자를 유혹하기 위해 의도가 의심스러운 내용들도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동물용 구충제의 암치료 효과 논란은 단순이 치료 효과가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닌 오히려 보건의료계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