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공무원·냉소적인 기자·갑질 의원의 ‘까칠한’ 국정감사

피곤한 공무원·냉소적인 기자·갑질 의원의 ‘까칠한’ 국정감사

인턴기자 국감 관찰기… 마라톤 질의응답, 정시퇴근하는 사람은 나뿐

기사승인 2019-10-14 04:00:00

올해 국정감사가 중반을 넘고 있다. 여러 상임위가 그렇듯 보건복지부와 산하기관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은 나름의 정책 검증에 매달려 있다. 의원들 사이에 정쟁이 벌어지며 오가는 거친 언사, 피감기관 대표의 불안한 눈빛, 이를 지켜보는 취재진들. 일년에 단 20일,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헤집어 놓는 국감을 인턴기자가 짧고 굵게 체험했다.

국감 현장은 불친절의 연속이었다. 비판자료를 잔뜩 '장전'한 국회의원, 복도에 진을 친 각 부처 공무원, 그리고 그들을 냉소적으로 지켜보는 언론까지, '까칠한' 세 무리가 서로 부대끼고 있었다.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국회 본청 6층 보건복지위원회 소회의실 구석을 지키며 목격한 불친절의 원인은 다양했다.

불친절의 가장 큰 이유는 피로인 듯 보였다. 2일 피감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공무원들은 회의실 앞 복도에 임시 사무실을 차렸다. 이들은 복합기, A4용지, 세면도구, 선풍기까지 여행용 캐리어를 동원해 챙겨와 종일 자리를 지켰다. 복합기를 사무실에서 국회까지 가져온 것이냐고 물었다.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럼 가져왔지, 여기서 만들었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국감 기간 공무원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지난 2017년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감사 기간 업무폭탄으로 행정력 소모가 심각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실제 마주하자 이러한 주장은 사실로 보였다.

정장 차림으로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한 공무원은 이마를 쓸어 넘기며 “저게(국감이) 끝나야 집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 3교대 같은 건 없다”며 “이미 팀 전체가 총동원 상태라서 여유 인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는 농약성분 DDT와 함께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선정했다. 농약만큼 독한 국감 업무에 절어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시 퇴근 예정인 인턴 기자는 더 이상 이들을 귀찮게 할 수 없었다.

‘아는 자’의 불친절도 있었다. 국감에 출석한 한 참고인은 고액의 약을 급여화 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국회의원도 울먹이며 질의를 이어갔다. 소회의실에 있던 기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일반적인 도덕관념에 비춰 웃음이 나와도 참아야 할 순간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제약사와의 이해관계에 대한 선배의 설명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다. 비급여 의약품이 급여화되면 환자들은 이전보다 적은 돈을 내고 해당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다. 급여화 문제를 둘러싸고 환자단체-제약사-정부-국회의원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맞물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내막을 아는 기자들의 반응이 일부 이해가 됐다.

이유 없는 불친절도 포착했다. 7일 복지위 소속 한 의원은 자신의 질의 순서에 보좌진이 자료화면을 한 번에 재생하지 못하자 “쟤 뭐하니”라며 면박을 줬다. 의원의 싸늘한 목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그대로 생중계됐다. 보좌진은 당황한 기색 없이 곧 필요한 자료를 찾아 재생했다. 의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질의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 같은 상황에 익숙한 듯했다.

사안의 중요성, 부족한 질의시간 등 상임위원은 상황이 주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압박이 직원을 하대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이른바 ‘갑질 금지법’이 시행된 후 1개월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진정은 379건, 이 중 상관의 폭언에 대한 진정이 152건(40.1%)으로 가장 많았다. 152명 가운데는 국회노동자의 진정도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불친절에 익숙해졌을 무렵 문득 상냥함을 마주하기도 했다. 한 공공기관은 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국감 위원들뿐만 아니라 보좌진과 기자들에게도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기자실에는 책상마다 전기 콘센트가 있었으며 각 매체의 명패까지 마련돼 있었다. 앞서 국회 본청에서 인턴 기자는 쓰레기통 옆에 쪼그려 앉아 노트북 배터리를 충전했다. 낯선 대접에 어리둥절했다.

이러한 친절함에는 비판 수위를 낮춰달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해당 공공기관은 국감에서 해명해야 할 예민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었다. 동행한 선배는 “기자에게 공짜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없다”며 분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가성 친절보다 정직한 불친절에 적응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성주 인턴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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