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집 이야기’ 열쇠공 아버지가 열지 못하는 그 집

[쿡리뷰] ‘집 이야기’ 열쇠공 아버지가 열지 못하는 그 집

‘집 이야기’ 열쇠공 아버지가 열지 못하는 그 집

기사승인 2019-11-20 06:00:00

신문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하는 은서(이유영)은 이사갈 집을 찾는 중이다. 정작 집을 보러간 그의 눈은 창밖을 향해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 퇴짜인지 부동산 아저씨도 곤란해할 정도다. 결국 집을 찾지 못한 은서는 어릴 적 살던 인천집에서 홀로 지내는 아버지 진철(강신일)을 찾아간다. 은서는 곧 이사 갈 거라며 짐도 풀지 않지만, 창문 하나 없는 오래된 집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집 이야기’에서 집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재혼한 후 제주도에 사는 엄마의 2층 단독주택과 익산에 사는 언니의 아파트, 은서가 임시로 머무는 레지던스 등 형태와 크기가 다른 각각의 집은 그곳에 사는 인물의 캐릭터와 다름없다. 또 진철에게 창문의 의미가 남다른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내와 딸과 교류가 끊긴 진철이 그들의 집 앞에서 서성이며 집 내부를 상상하는 건 가족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암시한다.

진철의 직업이 열쇠공인 것 역시 상징적이다. 진철은 보통 사람은 들여다봐도 잘 보이지 않는 온갖 자물쇠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제하는 전문가다. 굳게 잠긴 커다란 금고마저 즉석에서 열쇠를 만들어 열 수 있는 그는 정작 사람의 마음을 열 방법을 모른다. 관계에 서툰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자신을 창문 없는 방에 가둔 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집 이야기’에서 눈여겨 볼 지점은 이야기의 지향점이다. 이혼 가정에서 성인이 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둘을 억지로 화해시키는 뻔한 신파나, 가족 간의 어설픈 화해극으로 끌고 갈 생각이 없다. 대신 아버지 진철에 온 집중을 쏟는다. 은서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진철의 집에 머무는 시간만큼 진철과 함께 밥을 먹고 짧은 이야기를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다가간다. 그 과정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담백하게 그려져 흥미롭고 따뜻하다.

‘집 이야기’란 제목과 달리 ‘진철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그런 만큼 배우 강신일의 분량과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그동안 큰 목소리를 내는 형사 역할을 주로 맡아온 강신일의 일상연기가 얼마나 훌륭한지 엿볼 수 있다. 그의 무심한 말투와 힘없는 뒷모습, 걸음걸이만 봐도 많은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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