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영화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가 그렇다. 영화가 다루는 실종 아동과 관련된 이야기는 분명 이 사회에 필요한 주제다. 가족을 잃은 아이와, 아이를 잃은 가족의 심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 이후의 삶을 그리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순간 길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나를 찾아줘’는 6년 전 실종된 아들 윤수를 찾는 정연(이영애)과 남편 명국(박해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연은 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틈날 때마다 명국과 함께 아이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윤수의 생김새와 흉터, 발톱 모양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제보자의 연락을 받는다. 정연은 윤수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제보자의 쪽지에 적힌 만선낚시터를 향해 운전대를 잡는다.
‘나를 찾아줘’는 108분의 러닝 타임 내내 정연을 괴로운 상황에 빠뜨린다. 정연은 우연한 사고로 조력자를 잃고, 우연히 나쁜 사람들을 만나고, 우연한 사고를 또 겪는다.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고통스러운 상황에 계속 휘말릴 뿐이다. 정연이 극한의 상황까지 몰리는 동안 카메라는 그저 무표정하게 응시한다.
영화에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드라마와 지독한 악인들의 스릴러가 동시에 존재한다. 드라마와 스릴러 모두 그 자체만 보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악인들이 가득한 장르물의 세계로 현실 세계의 어머니가 진입하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상상할 수 있는 나쁜 일이 모두 일어난다. 스릴러의 세계에서 어머니는 신경 거슬리는 먹잇감이고, 드라마의 세계에서 악인들은 끔찍한 악몽이 된다. 이처럼 완전한 비대칭 구도 속에서 정연이 겪는 고통의 수치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아진다.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그 고통이 그대로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전하려고 했던 처음의 선한 메시지는 중반부를 넘어가며 희석된다. 극중 정연은 잘못한 것이 없다. 아들을 찾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한 것도 아니고, 실수를 저질러 일이 꼬이는 것도 아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긴다. 그럼에도 이미 6년째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는 정연은 홀로 극한의 고통을 겪고야 만다. 그 이유를 극중 서사만 봐선 찾기 힘들다. 실제 현실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보편적인 사건들이라기엔 지나치게 극적이고 잔혹하다. 결과적으로 정연의 고통은 영화 내 장르 서사를 완성시키는 동력으로 쓰인다. 악인들이 생각보다 더 악한 모습을 보여줄수록, 정연과 아이들의 상황이 더 악화될수록 영화의 장르적 효과가 선명하게 살아난다.
사회적 시스템이나 주변인의 관심이 아닌 개인의 책임감에 집중한 것,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위대한 모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이용하는 것, 계몽주의로 흐르는 결말도 아쉬운 지점이다.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고 싸우는 여전사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실제로 실종된 아이를 찾고 있는 부모들에게 권하기 어려운 영화다. 배우 이영애와 유재명이 온 몸을 다해 펼친 열연마저 빛이 바랬다.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