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동백꽃 필 무렵’ 종영①]

옹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동백꽃 필 무렵’ 종영①]

옹산에만 있는 것, 어디에나 있는 것

기사승인 2019-11-22 07:00:00

KBS2 ‘동백꽃 필 무렵’ 방송 초반, ‘옹산마을’과 ‘옹산역’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드라마 배경이 된 ‘옹산’이 현실에 존재하는 지명인지 궁금했던 네티즌들이 검색어를 입력한 것이다. 옹산은 임상춘 작가가 ‘동백꽃 필 무렵’을 위해 만들어낸 가상도시다. 임 작가는 옹산을 충청도 어딘가에 위치한 게장이 유명한 도시로 설정했다. 실제 드라마는 경북 포항 구룡포 일대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옹산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끈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옹산은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펼쳐지는 배경이다. 강종렬(김지석)-제시카(지이수) 부부가 등장하는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드라마에 서울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잠깐씩 등장하는 서울은 사람보다 회색 콘크리트 벽이 더 많이 보이는 곳이고,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곳이다. 활력 있고 사람 사는 동네로 그려지는 옹산의 반대편에서 옹산을 더 살만한 곳으로 대비시키는 것이 서울의 역할이다. 서울에 사는 강종렬과 제시카, 나중엔 제시카 엄마 이화자(황영희)까지 옹산으로 이동해 이야기에 참여할 정도로 옹산은 드라마의 주무대다.

옹산은 드라마의 배경을 넘어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한다. 옹산이 갖고 있는 정서와 지역적 특색은 드라마에 꼭 필요한 장치다. 다른 지역이 아닌 옹산에서만 가능한 필연과 우연들이 쌓여 드라마의 서사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옹산은 동백이(공효진) 같은 “외지인이 버티기 쉽지 않은 곳”인 동시에, 강종렬이 추억하듯 “온 동네가 가족 같은 뜨뜻한 곳”이다. 게장골목이 중심인 옹산은 며느리가 가업을 이어받고 남편은 주차하다가 범퍼나 긁는 모계 사회인 동시에, 까불이처럼 위험한 연쇄살인마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하는 행동마다 민폐인 노규태(오정세)와 하는 말마다 사이다인 홍자영(염혜란)이 부부로 사는 곳이고, 경찰도 못 잡는 까불이를 동네 순경이 잡는 곳이다. 옹산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현실적인 지역인 동시에, 어디에도 없을 비현실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동백꽃 필 무렵’은 외지인 동백이 옹산에서 어떻게든 버티는 이야기다. 극 중 동백은 옹산을 떠날 위기를 여러 번 맞는다. 8000원짜리 땅콩 서비스를 주지 않아 마음이 상한 건물주 노규태는 동백에게 가게를 빼라며 소리치고, ‘베프’로 지내며 든든하게 지켜줬던 곽덕순(고두심)은 아들 황용식(강하늘)과 연애하는 동백을 밀어낸다. 게장골목 상인들로 구성된 ‘줌마피아’는 동백이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를 불편해하며 텃세를 부리고, 알 수 없는 원한을 품은 까불이는 동백에게 까불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꾸준하게 보낸다. 그때마다 동백은 가게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옹산을 떠날지 고민한다. 매번 동백이 더 버텨보기로 결심하고 힘을 내는 이유는 옹산이 좋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옹산을 떠나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백은 옹산과 맞서는 방법을 선택한다. 자신과 용식이를 괴롭히던 노규태 앞에 옹산 남자들의 과거 성희롱을 기록한 치부책을 꺼내고, 줌마피아의 삐딱한 시선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긴다. 까불이의 협박에는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영업을 재개했다. 드라마에선 용식과의 로맨스가 동백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동백이 변한 이유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옹산에서의 생존과 아들 필구의 존재다. 스스로 ‘옹산 토백이’라 자랑하는 용식은 동백과 마주볼 수는 있어도, 나란히 설 수는 없는 인물이다.

옹산은 동백을 변화시켰지만, 동백은 옹산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드라마가 끝나도 옹산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2의 동백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고, 계속 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옹산은 외지인에게 텃세를 부리고, 술집에서 성희롱을 저지르고, 미혼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이다. 동백이 옹산에 뿌리를 섞고 정착하는 결말은 그에겐 해피엔딩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 일도 아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임상춘 작가는 왜 동백을 다른 곳이 아닌 옹산으로 보냈을까.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뭘까. 옹산은 정말 가상 도시일까.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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