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간호법 제정’ 문제 없다더니

[기자수첩] ‘간호법 제정’ 문제 없다더니

기사승인 2019-11-28 02:00:00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간호법 제정은 쟁점이 없으므로 쉽게 통과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도 이뤄지지 못해 이번 국회 임기 내 법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지난 10월 30일 광화문 광장에서 간호정책 선포식이 열렸다. 5만여명의 간호사들이 모인 가운데, 여야를 가리지 않고 70여명의 국회의원이 이 자리에 참석해 간호법 제정을 이번 20대 국회 내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간호법 제정에 대한 역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보건의료단체 단독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내왔던 분야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는 ‘간호법 제정을 위한 100만 대국민 서명운동’, 간호정책 선포식 등으로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홍보해왔다. 최근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 중심으로 보건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점에 간호사의 다양성·전문성을 강조하며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간호법 제정’으로 인해 의료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지금도 더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상급종합병원에서 의사의 치료를 받기를 원한다”며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의료서비스라도 의사에게 받고자 할 것. 의료행위는 의사의 지도 아래서 진행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간호사 업무범위에 대한 정의가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업무’에서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또 “간호법이 제정되면 다른 직능의 단독법도 연이어 발생할 것”이라며 “의료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물리치료사를 비롯한 의료기사들도 꾸준히 단독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간호사와 의사 사이의 쟁점이 있고 이해관계 충돌이 존재하지만, 간호정책선포식에서는 모두가 한목소리로 ‘간호법을 제정하자고 밝혔다. 5당이 함께 발의했다고도 밝혔고, 이주영 국회부의장은 의사봉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 확실하게 간호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쟁점 없는 법안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인력 부족, 지역간 수급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거리로 나선 간호사 5만여명 앞에서 국회의원들은 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다. 행사장에서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한다면 뒤에 따르는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20대 국회 임기는 내년 6월이면 끝난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기는커녕 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도 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번 국회 임기가 끝나면 해당 법안도 자동 폐기된다.

매년 열리는 간호정책 선포식에서 매번 반복되는 ’간호법 제정‘. 꼭 통과시키겠다는 정치인의 목소리들이 진실한 말인지, 사탕발림인지 헷갈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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