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습기살균제 파동, 아직도 현재진행형

[기자수첩] 가습기살균제 파동, 아직도 현재진행형

기사승인 2019-12-01 07:00:00

“우리 아내 누가 저렇게 만들었을까요. 접니다, 저예요.

지난 9월5일 종영한 SBS 드라마 ‘닥터탐정’은 2011년 전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가습기살균제 참사사건’을 다뤘다. 갓 태어난 아이와 아내를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잃은 드라마 속 한 가장의 울부짖음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반면, 이기적이고 태평하기만 한 기업·정부 관계자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세간에 드러난 지 8년, 드라마가 종영한지도 이제 3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가슴의 멍울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여전히 과거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절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나치게 협소한 건강피해 인정은 피해자를 괴롭힌다.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지난 1994년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개발했을 당시, SK 계열사 부장으로 일한 장모(63)씨는 지난달 24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지난 5∼6년가량 가습기살균제를 썼으며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장씨는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건강이 안 좋아져 피해자 신청을 냈지만, 사실상 인정받지 못했다. 폐 손상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로 판정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폐 질환(1∼3단계)과 천식, 태아 피해, 독성간염, 기관지확장증, 폐렴, 성인·아동 간질성 폐 질환, 비염 등 동반 질환, 독성간염만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인정한다. 장씨와 같은 폐암은 피해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의 ‘무책임한 윤리의식’도 여전하다. 지난 8월28일 열린 ‘2019년도 가습기살균제참사진상규명청문회’(청문회)에서 박헌영 LG생활건강 대외협력부문 상무는 “정부가 인정한 물질로만 만들어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모든 분무 제품에 대해 흡입독성 테스트를 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분무 제품에 대해 호흡독성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한 3년 전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2016년도 국정조사 당시, 이정애 LG생활건강 부사장은 ‘이제부터는 모든 제품에 대한 안전 테스트를 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피해보상대책에 관한 질문에 박 상무는 “국기기관 실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판정기준에 따라 피해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판단되면 배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LG생활건강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가습기살균제인 ‘119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다. 제품에는 BKC(염화벤잘코늄)와 Tego 51이라는 살균물질이 들어있었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심판관리관은 “2016년 9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회사들의 표시광고법 위반사건 처리와 관련해 공정위 위법처리 실상을 증거로써 확신하게 됐다”며 “공정위 내부에서부터 자체 시정을 요구하고 설득했고, 적법한 처분과 처벌을 진정해왔는데도 2017년 9월 김상조의 공정위는 끝내 가습기살균제 관련 공익부패행위의 본질을 은폐하고 또 은폐할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선수적으로 가습기살균제 의혹에 대해 내부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에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소비자 중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낀다면서도 가습기특별조사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린 후에 소비자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

다시 드라마 ‘닥터탐정’ 장면이다. 가장은 쓸쓸히 식탁에서 소주로 슬픔을 달랜다. 정부도, 기업도 잘 잘못이 아니라기에 가족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의지할 곳은 없다. 하루하루 얼굴에 그늘만 늘어간다. 실상도 다르지 않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들은 답답할 뿐이다. 제대로 된 보상을 촉구하는 사람들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 여전히 피해자 눈에는 눈물 마를 날이 없다. 2019년도 한달여가 남았다. 내년에는 제대로 된 피해자 위로가 이뤄질까. ‘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을까’라고 후회하며 자신만 탓하는 가장의 모습. 드라마면 족하다.

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

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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