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본격적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저지행위)에 돌입했다. 22건 중 2건의 예산부수법안만을 처리한 이후다. 이에 모든 법안처리는 오는 25일까지 중단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과 집권여당을 향한 비난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및 경제법안과 내년도 예산집행을 위한 부수법안 등의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개최를 요구해왔고, 23일 오전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문희상 의장 또한 회동에서의 ‘원포인트 본회의’ 개최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협의에 의한 의사진행’을 희망한다며 2차 회동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오후 6시30분경 오후 7시 본회의 개최를 선언하고 대화를 단절했다.
이주영 국회 부의장과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 등 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항의방문차 국회의장실 문 앞을 에워싸 “민생법안을 상정하라”고 외치며 본회의장 출입을 봉쇄하자, 다른 출입구를 통해 예정된 개의시간보다 50여분 늦게 본회의장에 입장, 본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문 의장은 한국당 의원들의 고성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심지어 첫 안건이자 이번 임시국회의 회기를 오는 25일까지로 하는 ‘회기 결정의 건’에 신청된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요청조차 “해당 사항이 없다”며 표결처리해 통과시켰다.
나아가 한국당이 33개의 수정안을 제출하며 지연시키려 했던 예산안 부수법안들 2건에 대한 제안설명 또한 단칼에 거절하며 2번의 토론만을 허용한 후 표결에 부쳐 처리했다. 하지만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된 실질적인 발의법안은 이게 전부였다.
문 의장의 다음 선택은 ‘안건상정 처리순서 변경의 건’으로 상정된 33개 법안 중 27번째 법안이자 20대 국회 가장 뜨거운 감자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었다. 20개 예산부수법안을 남겨둔 채였다. 그는 민주당 요청이라며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상정한 후, 한국당에서 신청한 필리버스터의 시행을 선언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국회 의장석을 둘러싸고 “아들 공천에 나라를 팔아먹고 국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다”며 ‘날강도’, ‘의장 사퇴’, ‘의장 불법’ 등의 고성과 손 팻말을 흔들었다. 일부는 의장석을 손으로 두드리거나 문 의장을 향해 서류뭉치를 집어던지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본회의가 필리버스터 상황에 들어서자 “군사 독재정권 시절에도 이런 날치기는 없었다”면서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하는 전 정권, 전전 정권에서도 국회가 이렇게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하고, 국회의장이 철저히 청와대 하수인을 자처하며, 여당 의원 전원이 좀비라도 된 듯 일사불란하게 권력 앞잡이 노릇을 한 적은 없었다”고 비평했다.
이어 “법도 관행도 무시한 다수의 날치기 강행처리가 문제없다는 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며 “오히려 다수라는 이름의 합법적 폭력으로 대한민국을 전체주의 국가로 만든 것이 바로 문재인 정권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마저 파괴하는 것을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문 의장과 민주당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질 전망이다. 앞서 민생법안과 예산부수법안의 연내 처리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당을 향해 본회의 개의를 요구해왔던 이전 모습과 달리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된 예산부수법안은 2건에 불과했고, 비쟁점 민생법안으로 분류된 법안들은 대부분 상정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국당 고위 관계자는 “정작 민생법안을 처리하자고 목소리 높이며 민생법안을 볼모로 한다고 한국당을 비난했던 이들의 실체”라며 “그들에게 진정 민생과 경제,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은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