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수 300석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거대양당이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사회분위기를 감안했다며 영입인재를 속속 발표했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일부 새얼굴들을 향한 의혹과 논란이 제기되며 정당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를 의심받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에 정당들이 차기 인재발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또 ‘조국’? 민주당 인재영입 전반 ‘발목’
21대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 정치개혁,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8일까지 5명의 영입인재를 발표한 더불어민주당이 9일 6번째 영입인사 소개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직전인 5번째로 소개한 새얼굴을 비롯해 앞서 공개한 인사들이 ‘도덕성’과 ‘사회공감능력’이 문제시 됐기 때문이다.
발단은 민주당의 5번째 영입인사로 지난 7일 대중 앞에 나선 ‘청년 소방관’ 오영환(31·남)씨의 기자회견 중 조국 사태에 대한 견해를 묻는 마지막 질문이다. 오씨는 “물론 허물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모든 학부모가 당시에 관행적으로 해온 행위가 침소봉대하듯 부풀려졌다”고 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29일 2번째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장애를 가진 홀어머니를 모시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소개된 원종혁(30)씨가 이날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 당시 조국 사태에 대한 소신발언은 반대 차원에서 문제가 됐다. 원 씨는 “조 전 장관의 도덕적 해이와 관련해서는 물론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청년을 대표하는 민주당의 두 영입인사가 각자의 소신에 따라 조국 사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히며 이들을 향한 민주당 내외의 의견도 둘로 나뉘었다. 오 씨에 대해서는 청년층의 비난이, 원 씨에 대해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질타가 쇄도했다. 이에 민주당은 오 씨를 잡으려니 원 씨가 걸리고, 원 씨를 잡으려니 오 씨가 걸리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이와 관련 당 관계자는 “조 전 장관과 관련해서는 제도와 관행, 윤리, 형사법적 측면이 섞여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면이 있다. 영입 인사들이 포부를 밝히는 자리에서 함축해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인사도 “청년층 인재를 정치공간으로 끌어들여 다양성을 높이고 이들에게 역량을 펼칠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민주당은 당장 오늘(9일) 6번째 인재를 발표하고, 2~3일에 1명씩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안보·경제 등 분야별 전문가 위주로 총 10여명의 사회 대표격 인사를 소개할 계획이지만, ‘조국 사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일련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26일 발레리나에서 후천적 요인에 의해 척수장애인이 된 최혜영 강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장애인인식개선교육센터장·41·여)을 1호 인재로 영입한데 이어 원종건 이베이코리아 기업홍보팀 직원, 김병주 전 육군대장(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58·남), 소병철 순천대 석좌교수(전 대구고등검찰청 고검장·62·남)을 민주당의 새얼굴로 내세웠다.
◇ 또 ‘내로남불’? 기준과 행동사이 ‘위화감’
민주당이 인재영입과정에서 암초에 걸렸다면 자유한국당의 인재영입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기존 정치에 대한 개혁과 혁신, 구태 정치와의 결별, 세대교체와 새로운 보수에 대한 요구, 황교안 대표의 지도력과 인물상을 판단할 무대로 평가된 인재영입의 장에서 현 시대나 사회의 기준에서 고개를 갸웃할 인사들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실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영입 1호’에 ‘공관병 갑질’ 논란이 제기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선택하려 한데다 사회적 문제제기가 계속되는 등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황 대표가 “귀중한 분”이라며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인데다, 결과적으로 당에 받아들여 지역구 출마선언을 할 발판을 마련해줬다.
더구나 박 전 대장 관련 문제로 한국당의 인재영입이 세간에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한 1차 영입자 8명의 명단에 또 다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며 영입기준에 대한 문제의식과 개혁의지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졌다. 대표적으로 입방아에 오른 인물들은 이진숙 전 대전MBC사장과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다.
이진숙 전 대전MBC사장은 과거 이력들이 문제가 됐다. 앞서 이 전 사장이 2012년 MBC기획홍보본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유력 대권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MBC와 부산일보의 정수장학회 지분매각을 논의했던 사실 등 과거 행적으로 인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MBC장악에 앞장섰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당시 MBC 보도본부장으로 MBC 보도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세월호 참사 언론책임자’로 지목됐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는커녕 대전MBC사장으로 승진했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출석명령이나 임의동행 명령에는 단 1차례도 응하지 않아 국민으로부터 원망과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 다른 논란 속 인물인 청년NGO(비정부기구)인 청사진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백 대표는 지난해 8월 24일 한국당의 광화문 집회연단에 올라 “저는 조국같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섰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변상욱 YTN앵커로부터 “반듯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면 수꼴(수구꼴통) 마이크를 잡게 되진 않았을 수도”라는 말을 들으며 호의적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곧 백 대표가 신보라 한국당 청년최고위원(비례대표) 의원실 소속 비서의 배우자이자 신 의원과 같은 단체에서 활동했던 대학 선후배 관계라는 점이 드러나며 ‘세습영입’이란 논란이 불거지며 역풍을 맞아야 했다. 이에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러한 영입은 황 대표의 독단과 공감능력 부족만 드러났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 앞으로가 문제… 국민의 선택은?
그 때문인지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해 말 “변화와 혁신의 척도인 인재영입에 총선의 성과와 당 사활이 걸렸다”면서 인재영입위원회를 재구성하고 1차 영입인재 발표에 이어 70여일 만인 8일 2차 영입인사 2명을 알렸다. ‘목발 탈북’으로 유명한 탈북 인권운동가 지성호(39)씨와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29)씨다.
그리고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당장 지 씨는 탈북과정에서 마취도 없이 지나가는 열차에 왼팔과 다리를 절제하고도 목발을 짚어 중국, 동남아를 거쳐 한국 땅을 밟은 도전과 의지의 상징이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에서 ‘자유’와 ‘인권’의 실체처럼 소개되며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찬사를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 씨의 경우 2018년 한 방송에서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성폭력 피해경험을 밝히며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졌고, 이후 스포츠계 폭력 및 성폭력 근절을 위해 힘써오고 있는 인물이다. 이와 관련 염동열 한국당 인재영입위원장은 “이들의 고난과 아픔을 이겨낸 인생사로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론의 반응은 다른 의미에서 조금 싸늘하다. 여론의 화살은 2차 영입인재가 아닌 한국당을 향했다. 타의 모범이 된 인물들이 정치놀음의 희생양이자 총선용 도구로 이용된 후 외면당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그 바탕에 존재했다. 그간의 한국당이 보인 행동과 이들을 영입하는 과정이나 영입 후 발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깔린 판단이다.
민주당도 8일 당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한국당이 진정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원한다면 인재영입을 통한 보여주기에 앞서 ‘체육계 성폭력 방지법’ 본회의 통과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면서 “한국당은 ‘스포츠윤리센터’를 두고 트집을 잡으며 법사위 통과를 지연시켰고 본회의 처리마저 발목 잡았다”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한편 거대 양당의 인재영입 관련 논란이 일고 있는 점을 두고 정치컨설팅 기관인 인사이트케이 배종찬 소장은 “청년과 여성, 소외계층에 초점을 맞춘 것은 좋은 평가가 가능하지만 결국 중도층과 부동층을 공략할 목적 즉 총선 승리와 득표에만 눈이 먼 정치공학적 접근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정치쇼, 총선쇼가 아닌 독립적 기구를 통해 객관적 인재영입기준을 수립해 국민들이 진정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인재영입이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