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97일 앞둔 9일, 정당들이 표심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의당에 이어 자유한국당까지 정당의 색깔과 의지를 가장 강하게 담는다는 1호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 공약이 실생활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찰과 격론이 예상된다.
◇ 대놓고 ‘포퓰리즘’ 선보인 정의당=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정당들 중에서는 가장 앞선 9일 오전 10시30분, 총선공약 1호인 ‘청년기초자산제도’를 선뵀다. 제도의 핵심은 만20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3000만원을, 양육시설 퇴소자나 부모가 없는 청년에게는 최고 5000만원까지 국가가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지난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정의당이 ‘만20세 1000만원 지급’을 골자로 내놓은 ‘청년사회상속제’의 강화판이다. 이를 두고 심 대표는 “청년들에게 공정한 출발을 위한 최소한의 자산을 형성해주고, 소득격차보다 더욱 구조적이고 심각한 자산격차와 불평등의 대물림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내세웠다.
이어 1000만원을 주는 청년사회상속제를 3000~5000만원을 주는 청년기초자산제로 재설계해 공약한 이유로는 “더 극심해진 불평등에 대처하고, 우리 청년들에게 막연한 위로나 희망이 아닌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청년들이 부모의 도움이 없더라도 사회에서 자립할 최소한의 종자돈 규모를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4년 교육비와 주거 임대보증금, 2년 정도의 추가 임대료, 학자금 대출의 부채상환 규모, 초기 창업자금 등을 기초로 산출할 경우 만20세 청년에게 3000~5000만원을 지급한다면 부모의 지원 없이 성인으로 정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소요자원은 상속증여세 강화, 종합부동산세 강화, 부유세 신설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 대놓고 ‘정권심판’ 기치건 한국당=정의당이 ‘좋은 포퓰리즘’이라며 현금지급을 약속했다면, 한국당은 최근 국무회의까지 통과하며 설치가 확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폐지와 문재인 정부의 정권장악의 도구로 활용된 검사에 대한 법무부의 인사추천권 대검찰청 이전 등 검사 인사제도 개편을 1호 공약으로 발표했다. 보수진영의 가장 큰 우려이자 최대 화두인 ‘정권심판’을 간판으로 내건 셈이다.
이와 관련 한국당의 총선공약을 책임질 ‘2020 희망공약개발단’ 총괄단장인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반헌법·반민주적 문재인 정권을 극복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개혁 1호로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의 첫째는 ‘괴물 공수처’ 폐지”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1호 공약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비리의혹 수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정치적 반대자나 권력자의 뜻에 맞지 않는 공직자는 철저하게 보복하는 ‘괴물(공수처)’를 헌법에 근거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수사기구를 헌법과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하며 탄생시켰다”며 절차적 문제와 야기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들었다.
여기에 ▲법무부의 검사 인사실무부서 대검 이관 ▲인사 추천권 검찰총장 부여 ▲검찰인사위원회 구성 다양화 및 인원 증원 ▲국회추천인사 편입을 통한 견제기능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 ‘검사 인사제도 개편’을 공약에 긴급히 포함시켜 전날(8일) 이뤄진 ‘추미애 법무장관의 검사 대학살극’ 재현을 막고, 검찰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는 일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더했다.
◇ “표 아닌 국가발전 위한 선한공약이 그립다”=문제는 이들의 공약이 특정 계층의 표를 다분히 의식한 공약으로 풀이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당장 한국당의 공약에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등 공수처 설치를 찬성한 유권자들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점에서 공수처를 반대해온 보수진영 중심의 지지층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는 공약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의당 또한 현금지원을 받게 될 청년들의 지지를 받을 수는 있지만 재원마련 자체도 쉽지 않은데다 소요되는 자원의 출처인 세금을 내야하는 여타 연령층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정당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전형적인 총선용 공약이라는 질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심 대표조차 ‘선거철 등장하는 흔한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난을 예상한 듯 공약발표당시 “청년기초자산제도는 좋은 포퓰리즘”이라며 “이 시대 청년들이 겪고 있는 실생활의 난관과 극심한 불평등을 완화를 할 수 있다면 그런 비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아가 “정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정의당의 정책을 비난하기에 앞서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답해주기 바란다. 문제해결의 대안도 없이 청년을 단지 정치적 수사로 호명하고 동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나쁜 포퓰리즘의 전형일 것”이라며 역으로 일침을 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에 대해 한 야권 관계자는 “포퓰리즘 자체가 나쁜 것 아니냐.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또 “단어의 정의를 떠나 공약자체도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정책이다. 한 해 재원만 15조원 전후로 들어갈 텐데 어떻게 감당한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먼저 정의당 당비로 만20세 당원에게 줘보고나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힐난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한국당 1호 공약을 두고 “여론분위기 상 ‘자유한국당’ 이름걸고 나가면 지지층 몰표가 아니면 당선이 어렵다는 판단 아니겠냐”며 “전형적인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더욱이 중도보수 대통합으로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면 공약도 새로 내놔야하니 일단 가려운 곳이나 긁어주자는 의도도 있었던 듯하다”고 풀이했다.
이어 “공약은 국가와 사회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미흡한 점을 보완하는 정당이 생각”이라며 “선거는 물론 표를 잡기 위한 행위이고, 공약은 표를 모으기 위한 방안이라지만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실현가능한 방안들을 고민하고 내놔야하지 않겠느냐”고 씁쓸함을 내보이기도 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다음 주 중 ▲청년 일자리 확보 ▲신혼부부 주택공급 ▲신산업 육성정책 가운데 1호 공약을 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후 여성·환경·경제·4차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밖에 바른미래당은 ‘주거안정대책’을 유력한 1호 공약으로 고려하며 오는 17일 전후, 여타 정당도 연휴 전후로 공약발표시일을 잡아가는 분위기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