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전통문화 바라보기] 트로트의 미학(美學)

[김용호 전통문화 바라보기] 트로트의 미학(美學)

기사승인 2020-03-13 15:29:24

글 :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지난해 전남 진도 출신으로 학창시절 판소리를 전공했던 송가인은 종편 방송인 '내일은 미스트롯'을 통해 새로운 대중음악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러한 한 트로트의 오디션 방송은 다시금 장르의 새로운 열풍을 일으켰고 각 방송매체를 통해 복고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이후 성별을 바꿔 다시 제작된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또 다른 스타를 발굴하여 트로트 전성시대의 중흥을 알렸다. 이 프로는 12일 마지막 결선 방송 시청률이 무려 35%를 넘었다고 한다. 어느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러한 종편에서의 시청률은 점유율이 90%라는 의미임을 밝히며 "오늘날의 열풍은 트로트가 우리 일상에 뿌리내려져 있다는 방증(傍證)이며, 한(恨)의 정서와 맥락을 같이해 온 장르가 폭발한 것"이라 평가했다.

트로트(Trot)은 원래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라는 뜻의 말이다. 이러한 트로트의 어원은 1910년대 미국과 영국 등에서 유행했던 리듬을 4박, 2박으로 나눈 폭스 트로트(fox-trot)란 명칭에서 나왔다. 이후 일본은 이러한 음악을 자국의 민속 음악과 접목하여 엔카(演歌)를 만들었고 대중가요 장르로 유행시켰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의 대중가수들은 전통의 민요를 신민요 풍으로 부르며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고 새롭게 문화 부흥에 다가섰으며, 음반을 제작함에 있어 2박의 폭스 트로트를 도입하고 더불어 엔카의 방식을 독창적으로 응용하여 한(恨)의 트로트를 만들어냈다. 

한국의 트로트가 품었던 과연 '한'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트로트가 대중에게 다가서기 시작한 1930년대는 전통 예술인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였다. 조선의 왕립음악기관인 장악원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아악부로 치부되어 간신히 축소, 연명되고 있었지만 궁궐 밖 민속악의 판소리 명창, 기악의 명인들은 조선음악연구회를 만들어 국민들의 애환을 노래하고 사라져가는 우리 얼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질세라 대중음악인들도 나라를 잃은 마음을 노래로 풀기 시작했는데 그러한 암울했던 시대의 트로트는 전통음악의 계면조(단조)와 한의 감성을 갖고 민초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1928년에 만들어진 이애리수의 '황성옛터'는 멸망한 조선을 떠올리는 가사로 문명의 허망함과 당대의 처연한 국가적 처지를 드러냄으로 민족의 노래로 대중에게 다가섰고 1934년 작사.작곡된 고복수의 '타향살이'는 민족적 설움과 통속적 비극을 잘 묘사하여 대중의 가슴에 파고들어 식민지하의 리얼리티를 담아냈다. 또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고 있는 1935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이별의 끝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그렸는데 이 곡은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 주었던 민중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으며,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애창곡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트로트에 대한 필자의 의견과 다른 인식의 경우도 물론 있다. 이 경우는 우리의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에 뿌리를 둔 왜색 음악으로 치부되어 그 존재가치를 폄하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물론 필자는 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나 평론가는 아니다. 하지만 트로트를 듣고 감정과 마음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대중이기에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구성진 ‘황성옛터’와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위안을 받았다. 그 존재가치의 계기가 어찌되었든 시대를 말하며 역사를 품으며 우리의 삶을 노래했다. 특히 전통 소리인 판소리를 공부한 한국인이 더 트로트를 감칠 맛나게 가슴을 조아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그러한 역량이 일본의 엔카를 많이 학습하고 불렀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엔카처럼 서양음악 선율은 단조이지만 한국 특유의 계면조 선율과 같고, 전통소리의 목구성(국악 전문용어로 성음<聲音>이라 한다)이 가미되어 한국인만의 소리인 트로트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문화와 시대의 중심 공간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K-pop이 전 세계를 울리고 있으며 한복, 한식, 한글, 국악, 태권도 등 우리의 문화가 세계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범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강인한 국가 경쟁력이며 무한한 경제적 가치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기쁨이 있고 슬픔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포용하고 살아가는가에 그 해답은 항상 있었다. 지난날의 실패와 과오는 또 다른 희망과 미래를 준비하는 자산이 된다.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의 한 대중문화가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적 감성과 수요에 의해 변화되고 창의, 융합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제 트로트는 우리가 만들어낸 귀중한 보배이며, K-pop처럼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한국 문화의 자산이다.

<한국학 박사(Ph.D)>

소인섭 기자
isso2002@kukinews.com
소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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