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현실화 된 가운데 전 세계 스포츠 리그도 일제히 멈췄다.
국내에선 프로농구를 비롯해 프로배구가 리그를 중단했다. 프로축구와 프로야구는 개막이 연기됐다. 유럽에선 4대 축구 리그가 코로나19 여파로 시즌을 중단했다.
미국 역시 NBA(프로농구)와 NHL(아이스하키), MLB(프로야구)가 리그를 중단하거나 개막을 연기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권고에 따라 리그 개최‧재개 등은 5월 중순에야 가능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7~8월 혹은 그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어 구체적인 재개시기를 점치긴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2020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를 주장하는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오는 7월 개막이 예정된 도쿄올림픽에 대한 지구촌의 시선은 우려로 가득하다. 일본 국민들마저 연기 혹은 취소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의사는 완고하다.
지난 16일 아베 총리는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는 증거로 도쿄올림픽을 온전하게 추진하자는 의견이 G7 차원에서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IOC도 “4개월 남은 올림픽 준비에 전념하겠다”며 “6월까지 선수 선발을 마무리하면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올림픽을 예정대로 진행하기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다.
일단 선수 선발부터 문제다.
코로나19 여파로 각종 대회가 취소되면서 선발전을 치르기 힘든 상황이다. 확산세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IOC가 전제로 건 기간까지 선수 선발을 모두 마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IOC는 일부 종목의 예선이 불발될 경우 세계 랭킹이나 대륙별 대회 성적 등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선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이 반발해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선수들의 컨디션 저하 및 경기 감각 저하도 고려해야 될 문제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우 모든 사업체와 공공시설 등이 일시적으로 폐쇄됐다. 선수들이 훈련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스페인 올림픽위원회(COE) 알레한드로 블랑코 위원장은 COE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스페인 선수들이 코로나19 때문에 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지만 지금 상태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IOC의 결정은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코로나19 관련) 리포트가 나온 이후에 그것을 기반으로 내려져야 한다”며 올림픽 개최를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포츠계 인사들도 IOC의 입장 변화를 요구했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의 IOC 위원인 헤일리 웨켄하이저는 트위터에 “(IOC가) 상황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책임하다”며 “코로나19로 훈련 시설이 문을 닫고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지역 예선 대회가 연기됐다. 당장 어디서 훈련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딴 그리스의 카테리나 스테파니디 역시 IOC가 엘리트 체육 선수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혹 우여곡절 끝에 선수 선발이 완료돼 예정대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할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무관중 경기로 올림픽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성화 봉송 출발식 등의 주요 행사들도 무관중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텅 빈 경기장에서 세계인의 무대를 축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잃는 것이 지나치게 많다.
자진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이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일본 역시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심지어 최근엔 축구협회장이자 도쿄올림픽위원회 부회장을 맡은 다시마 고조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국가 간 이동이 이전보다 훨씬 엄격해진 상황에서 올림픽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위험과 불편함을 감수할지는 미지수다.
도쿄올림픽이 감염의 새로운 온상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종식 시기를 점치기 힘들다고 말한다. 길면 연말까지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 타임즈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가장 많이 발생한 상위 15개국 출신 선수들이 전체 참가 선수의 약 36%에 달했다면서 선수들 간의 감염 위험 가능성을 제기했다.
제라르도 초월 조지아주립대 공중보건학 교수는 “여름에 기온이 올라가면서 전파 속도가 감소한다고 해도,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조치 없이 감염을 충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나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남반구에서 기온이 점차 떨어지면서 코로나19가 창궐할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밀집된 장소에 다양한 국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올림픽 무대는 코로나19가 세를 키우기엔 최적의 장소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6~7월 열릴 예정이었던 ‘유로 2020’의 1년 연기를 결정하면서 “대회에 연관된 모든 이들의 건강 및 경기 개최로 국가의 공공 서비스에 불필요한 압력을 가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전세계 축구팬들은 아쉬움을 감추고 UEFA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도쿄올림픽은 유로 2020에 비해 상징성도 규모도 훨씬 큰 무대다. 때문에 어느 대회보다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이번 올림픽은 대회 전후의 공정성, 선수단과 관중들의 건강, 감염 차단 등 완벽하게 대처해야 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기나 개최를 고려하지 않은 ‘완전한 형태의 올림픽’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고집을 부리다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동네 운동회'도 비가 오면 천막을 걷는다. 올림픽 강행이 지구촌에 미칠 악영향을 한번쯤은 고심해봐야 한다. 아베 총리의 이성적인 결단이 필요한 때다.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