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흙의 노래] 요리와 농사

[이병도의 흙의 노래] 요리와 농사

기사승인 2020-03-26 17:29:44

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거나, 만들어진 음식 자체다.

그 과정이 단순하던 또 복잡하던, 요리하는 이의 손과 마음으로 하나의 요리가, 누군가의 입에 들어갈 음식이 탄생한다.

요리의 시작은 대개 칼과 도마로부터 시작된다. 한낮 햇볕에 깨끗이 마른 도마와, 잘 벼러진 식칼 한 자루로 이제 시작이다. 재료가 도마 위로 오르고, 이윽고 식칼이 춤추기 시작한다. 웬지 코사크 지방 춤을 닮은, 그 현란한 식칼의 춤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송송송~'같은 의성어도 만들지만, 재료에 따라 또 도마에 따라 또는 칼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칼질하는 요리사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연극 '난타'를 보면 그러하다. 수 명의 요리사가 각기 만들어내는 도마질 소리로, 한판 신명나는 하모니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감자와 양파 써는 소리가 다르듯 재료에 따른 소리들이 제각각이라, 건넛방에 앉아서도 주방으로부터 들려오는 도마질 소리로써.. 오늘 저녁 어떤 식사를 하게될지 알 지경이다.

각각의 모양대로 썰어진 재료들은 이제 두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익혀지고, 데쳐지고, 쪄지고, 삶아지고, 볶아지고, 쫄아지고, 구워지고, 튀겨지기도 하지만.. 대게 이때쯤 '양념'이란 새로운 의복을 입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 새로운 옷은 재료 본연의 모습을 감추기 위함은 아니고.. 대개는 재료 본연의 빼어난 자태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칼칼하게 입맛 돋구는 배추겉절이 하나만 보아도 그러하다. 태양초와 기름 몇 숟갈, 그리고 몇번의 조물거림만으로도, 이제 그 배추의 맛을 새롭게 재해석 한다. 그래서 재료 본연의 맛으로 먹게되는 요리들은 주로 고급이고, 양념 맛으로 먹는 요리들은 저급을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의 한식은 이런 면에서 빼어나다.

된장찌개.. 그 진하고 깊은 냄새의 향연 속에서도 각각의 재료들은 조금도 움추려들지 않고, 자기만의 맛을 뽐낸다. 한식들은 대개들 이러하다. 어머니의 손을 통해, 무심한 듯 그저 눈대중 손대중으로 뿌려진 소소한 양념들이.. 우리네의 위대한 밥상을 만들어 낸다.

다음은 그릇이다. 각각의 요리들이 거기에 걸맞는 각각의 그릇에 담기고, 좋은 요리에 걸맞는 좋은 그릇에 담기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릇의 기준은 그렇지 않다. 어떠한 못생긴 그릇이라도 그 기준은 정갈함이고, 요리의 기본도 정갈함이며, 만약 음식과 요리에도 '도'가있다면 그 도의 기초 또한 정갈함이다. 언제, 어떤 음식이 담겼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그 새침하고 깨끗하고 단아한 얼굴 위로 음식이 오르면.. 비로소 하나의 요리가 탄생한다.

숙련된 요리사는 요리를 해 가면서 또한 설거지도 진행하곤 한다. 해서 요리가 식탁에 오를 때쯤이면.. 냄비며 집기 등 거의 모든 것들이 깨끗이 정돈되어 건조대 위에 오르기도 하지만.. 실은 그 과정이 그리 녹녹치는 않다.

마른 그릇들을 깨끗한 면 행주로 반짝반짝 흠치어 다시 찬장에 올려놓기까지.. 다음번 요리 여정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완벽한 셋팅까지.. 어쩜 요리 자체보다 그 뒤치다꺼리(?)가 더 한 수고와 노력을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요리에 이골이 나고 요령이 붙기 시작하면.. 가능한 찬장으로부터 그릇이며 집기들이 덜 기어 나오게 하는 꾀를 부리기도 하지만.. 요리가 무엇인가?, 음식이란 무엇인가?

소중한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이 취하여 즐거워하고, 피와 살을 만들고, 활력적인 삶을 이루어가는 그 고귀한 초석이 아니던가!

요리의 전 과정과, 그 반대로인 마무리 과정이 아무리 고되더라도.. 과정 모두는 어느 것 하나도 거저 되는 법은 없다.
말 그대로.. 애써야 한다.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듯.. 요리사의 손을 보면 요리사의 마음을 알 수 있고..농부의 손을 보면 농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요리사가 그 마음으로 요리하듯, 농부는 그 마음으로 농사짓는 것이다.

말 그대로.. 또한 애써야 한다.

이병도(농부)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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