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동운 기자 = 정부가 최근 50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시장 상인들은 반갑지 않다. 정부 지원이 절실하지만 영세 상인이 대출을 받기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행 등 금융사를 찾지만, 이들에게 마주하는 것은 “대출이 어렵다”라는 현실이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비상금융조치’를 발표한 지 3일이 지난 27일 오전 영등포시장 국민은행를 찾았다. 대출을 받으려는 시장상인들로 발 딛을 틈 없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영업점 창구는 썰렁했다.
국민은행 영등포지점 기업금융창구 직원은 “최근 코로나19 대출 문의가 매일 전화로 10건 이상 오고 있다”면서 “현재 은행에서 상담이 들어오는 데로 최대한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보증대출이 어려운 고객들의 경우 은행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체기금을 활용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업무가 많아지긴 했지만, 고객들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보고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말을 이어갔다.
한산한 모습은 인근 새마을금고도 마찬가지였다. 은행보다 대출을 받기 쉬운 제2금융권이 새마을금고였지만 상담인원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이유는 직원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새마을금고 직원은 “전통시장 인근에 위치한 영업점 특성상 전통시장 상인들과 주로 거래를 하고 있는데, 상인들이 코로나19로 매출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현금 위주로 거래를 하고 있다 보니 전자지급단말기가 없는 곳이 많아 공식 서류로 제출할 방법이 없는 업주들이 많다”라며 “정말 우리도 돕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도울 방법이 없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금융사가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지원 규정에 맞추려다 보니 시장상인들에게 대출을 못하고 있다는 것. 이런 어려움은 상인들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영등포시장에서 1998년부터 20년 이상 신발을 팔고 있다는 한 상인은 우선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어서 내놓은 상태”라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는 이어 “우리 같은 영세 시장상인들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대출을 하려면 매출이 줄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시장이란 특성상 현금 장사를 많이 하다가보니 매출 감소를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정부 발표 후 몇 번 은행을 찾았지만 대출 어렵다는 말 뿐이었다. 결국 대출 받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남은 일은 문닫는 일만 남았다. 점포를 내놓으려고 해도 나가지 않는다. 권리금조차 건질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인들의 어려움을 새마을금고에게 전하자 영업점 직원은 “시장상인회에게 특례보증을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지역신용보증재단과 전통시장상인연합회에게 공동으로 보증을 설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하면 자금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전통시장 영세상인들을 위한 추가적인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해주길 촉구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의 또다른 전통시장이 위치한 동대문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쁜 시간을 지나 상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점심시간, 동대문시장 인근 수협은행을 찾았다. 이곳마저도 눈을 의심케 할만큼 한산했다. 창구에는 2명 정도 상담하는 사람이 있었다.
수협은행 창구 직원에게 지점에게 이유를 묻자 “의류도매업 특성상 저녁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주로 오전에 고객들이 방문한다. 전화문의는 하루에 10건에서 20건 정도 오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착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옮겨 인근 신한은행을 찾았다. 그나마 이곳은 기업대출 상담창구 4곳에서 상담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기인원도 2명 있었다. 하지만 썰렁하기 마찬가지였다. 대출 상담으로 긴줄이 서있을 것이란 예상은 이곳에서도 빗나갔다.
이 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은 정부 지원 대출 현황 설명에 바빠 보였다. 그는 “지난해 동대문지점에서 정부보증대출 신청 건수가 약 200건이고, 올해부터 지난 24일까지 동대문지점에서 정부보증대출 신청만 336건이 들어왔다”라며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진 2월부터 대출 요청이 폭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개인대출창구도 코로나19 전담창구로 바꿔 서류접수를 받고 있다”며 “이번 주 서류작업을 끝낸 42건의 보증심사 요청을 서울신용보증에 등기로 보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신한은행 직원의 말처럼 정부가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을 돕기 위해 내놓은 특별금융지원 규모는 50조원에 달한다. 이는 정부 1년 예산의 약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하지만 27일 하루 현장을 둘러봤을 땐 이 많은 정부 지원이 서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것저것 다해봤다. 살기 위해 좌판을 깔았지만 올해는 정말 힘들다. 못 버틸 것 같다. 점포도 없고 해서 어떻게 대출을 받을 수 있냐.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도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다. 우리들에게도 지원이 절실하다”
영등포시장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다는 나이든 상인의 한숨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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