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 치매 원인 단백질의 섬유화 정도로 치매를 진단할 수 있게 됐다. 치매 정도를 최초로 물리적 수치로 정량화한 것으로 증상 발현 전 조기 진단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 이영희 단장과 연구진은 분광학을 이용해 대표적인 치매 원인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Aβ42)의 섬유화 진행 단계를 측정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치매 진단의 새로운 지표로 제시했다고 6일 밝혔다.
뇌에서는 대사활동의 부산물로 상당량의 노폐물이 생기는데, 배출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노폐물인 베타-아밀로이드(Aβ42) 단백질이 뇌신경세포들 사이에 침착되어 세포를 사멸시키면서 치매가 발병한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문진으로 인지행동능력을, 방사성동위원소표지법(PET)으로 단백질 침착을 확인하는데 이는 증상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만 진단이 가능하다. 조기진단을 위해 체액에서 베타-아밀로이드의 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으나 혈액은 상태에 따라 측정 신뢰도가 낮고, 뇌척수액도 정상 상태일 때의 베타-아밀로이드 농도가 사람마다 달라 뇌척수액을 여러 번 채취하는 추적검사가 필요했다.
연구진은 치매 환자의 뇌에서 서로 응집하여 섬유화 된 베타-아밀로이드 분자가 배출되는 것에 착안, 배출된 분자의 섬유화 정도를 분광법으로 구별하고자 실험을 계획했다. 정상 뇌의 베타-아밀로이드 분자는 단량체(monomer) 수준으로 짧지만 치매에 걸리면 베타-아밀로이드 단량체가 길게 모이면서 올리고머 또는 피브릴 구조로 중합체(polymer)를 이룬다. 이렇게 분자가 섬유화되면 독성을 띠고 분자 내 전하 분포가 달라진다.
연구진은 단백질의 전하 분포를 측정하기 위해 테라헤르츠 근접장 분광 기법을 사용했다. 파장이 적외선보다 길고 마이크로파보다 짧은 테라헤르츠 빛을 이용하면 주기적으로 변하는 광전도도를 보고 물질 내 전하의 특성 및 분포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테라헤르츠 영역 빛은 물에 잘 흡수되기 때문에 수분이 많은 생체 시료를 바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얇은 사파이어 판 사이에 시료 용액을 얇게 펴 빛 흡수를 최소화하고, 사파이어에 반사된 광학 신호가 잡음을 만들지 않도록 적합한 용액 두께를 찾아냈다. 이렇게 최적화된 시스템을 이용해 베타-아밀로이드 단량체, 올리고머 중합체, 피브릴 중합체가 각각 녹아있는 용액의 광전도도를 측정해 전하 분포를 얻었다.
실험 결과 단백질 섬유화가 진행될수록 전하가 시료 내에서 덜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실험에서 얻은 전하 분포 수치를 섬유화 정도로 변환하고 이를 ‘치매지수(Dementia Quotient, DQ)’로 명명했다. 치매지수는 독성을 띠지 않는 단량체를 0, 독성을 띠는 피브릴 상태를 1로 구분하고 이 사이의 섬유화 진행상태를 연속적인 수치로 나타낸다. 이는 치매를 물리적으로 정량화한 최초의 지표다.
주변 용액에 관계없이 베타-아밀로이드의 섬유화 정도를 단번에 측정할 수 있어, 뇌척수액 뿐 아니라 혈액 등 다른 체액에서 배출된 베타-아밀로이드의 절대적인 섬유화 상태를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교신저자인 이영희 연구단장은“이번 연구로 단백질 섬유화를 물리적으로 이해해 IQ, EQ와 같은 치매지수 DQ를 개발하고, 단백질 섬유화 단계를 규격화했다”며 “표지 단백질을 붙일 필요가 없는 간단하고 규격화된 진단법을 제시한 것으로, 기초융합연구를 통해 생물물리 분야의 오랜 숙제인 치매 조기 진단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가 발행하는 나노융합분야 세계적 학술지인 ACS Nano (IF 14.695)에 3월 13일자 온라인 게재됐으며 표지로 채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