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품법 국민의견 수렴 ‘진흙탕’… 중복접수·경품 통해 특정 입장 유도 ‘눈살’

동물약품법 국민의견 수렴 ‘진흙탕’… 중복접수·경품 통해 특정 입장 유도 ‘눈살’

농림부 “동물 복지·생명 윤리 본질 흐려… 제도 취지 왜곡 우려”

기사승인 2020-04-25 01:00:00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 정부가 동물약품법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가운데, 관련 직능단체들의 ‘꼼수’가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는 지난 16일 ▲동물용 항생·항균제 ▲동물용 마취제 ▲동물용 호르몬제 ▲동물용 생물학적 제제 등을 모두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의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의 일부 고시개정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의사 처방전 없이는 약국에서 반려동물 예방접종 주사제를 살 수 없게 된다. 

농림부는 개정에 앞서 행정절차법에 따라 개정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이에 따라 국민이나 단체는 법안 찬반 의견과 사유를 다음달 6일까지 농림부에 제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약사·수의사 단체가 국민 의견 수렴 결과를 일정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행태를 보였다. 경품을 주거나, 중복참여를 유도하면서 각 단체의 이익에 맞는 의견을 제출하도록 독려한 것이다. 

당초 약사와 수의사 단체들은 처방대상 동물약품 확대를 두고 대립해 왔다. 약사들은 동물병원 진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수의사들은 반려동물 소유자의 자가진료 행위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을 들어 찬성해 왔다.

대한동물약국협회는 의견 제출자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증정했다. 협회 측 안내문에는 ‘올바른 국민의 목소리를 내주신 분들께는 전원 스타벅스 커피를 드립니다’고 적혀있지만, 참여 페이지에 고정된 의견서 내용은 ‘반려동물 치료용 약물이 아닌, 예방 목적의 백신을 (처방대상 동물약품으로) 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해당 페이지를 통해 의견을 제출한 인원은 9572명, 기프티콘은 전량 소진됐다. 

서울시수의사회는 찬성 의견 중복발송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단체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반려동물 자가진료 철폐, 최소 4년은 더 걸립니다’라는 안내문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농림부에 행정예고 찬성 의견을 적극적으로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안내문에서는 특히 ‘찬성의견’과 ‘중복발송 가능!’이라는 문구가 강조됐다. 이 안내문은 23일 오전 삭제됐다.

두 단체는 모두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동물약국협회 관계자는 기프티콘 지급에 대해 "참여 독려 과정에 법적 문제가 없었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며 ”참여 페이지에 추가 의견 입력창을 넣어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행정예고 전문을 확인 후 동의하지 않으면 참여하지 말라는 설명도 덧붙였고, 중복참여는 엄격히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수의사회 관계자는 중복발송 가능 문구가 담긴 안내문에 대해 “구체적인 제작자를 밝힐 수는 없지만, 서울시수의사회 측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안내문은 아니다”라며 “중복 발송은 불법이 아니고, 한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농림부 동물약품 담당 관계자는 “국민 의견 수렴은 특정 이익단체나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며 “법을 고치기 전, 모든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기 위한 창구”라고 밝혔다. 이어 “기프티콘 증정과 중복참여 등은 농림부가 전달받을 국민 의견을 왜곡할 수 있다”면서 “이익단체들의 이해관계 다툼만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동물 복지와 생명 윤리가 사안의 본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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