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팬들이 목을 늘어뜨리고 기다리는 대회가 있다. 오는 28일부터 온라인으로 열리는 ‘미드 시즌 컵(MSC)’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매해 세계 각 리그의 스프링 스플릿 우승자들끼리 우승컵을 놓고 겨루는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를 개최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막이 불발됐다. 서머 시즌까지의 공백기가 상당히 긴 상황. 라이엇이 묘책을 냈다. 전통의 라이벌인 한국 리그(LCK)와 중국 리그(LPL)가 맞대결을 펼치는 단발성 대회인 MSC를 기획한 것이다.
MSC는 지난해를 끝으로 폐지 된 ‘리프트 라이벌즈’가 가진 속성을 일정 부분 버무린 대회다. 지역적으로 인접한 리그끼리 맞붙고 리그 별 상위 4위 팀까지 나선다는 점에서 리프트 라이벌즈와 동일하지만, 리그 대항전이 아닌 팀 대항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
MSC 기획 단계에서는 일부 선수들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동기 부여 결여와 더불어 이벤트성 대회에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반납해야 된다는 것에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엇이 대회 총 상금으로 60만 달러(약 7억3000만원)를 책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약 2개월에 걸쳐 열리는 LCK의 총 상금이 3억원, 우승 상금이 1억원임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액수다. 경기에 목마른 팬들의 수요를 충족하면서 선수들의 동력도 이끌어냈다.
아쉽지만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할 수는 없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대회는 철저히 비대면으로 치러진다. 서로 다른 국가에서 온라인으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공정성에 문제가 없도록 한국의 핑(Ping) 수치를 중국과 동일한 30ms 후반으로 설정할 예정이다. 라이엇은 MSC에 출전하는 LCK 팀들에게는 MSC와 비슷한 네트워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미 관련 툴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A조에는 각각 T1(LCK), 탑 e스포츠(TES‧LPL), 펀플러스 피닉스(FPX‧LPL), 담원 게이밍(LCK)이 포함됐고, B조에서는 징동 게이밍(JDG‧LPL), 젠지e스포츠(LCK), 드래곤X(DRX‧LCK), 인빅터스 게이밍(IG‧LPL)이 각각 자리했다. 이들은 풀리그 방식으로 한번 씩 맞붙게 되며, 각 조 별로 최다승을 거둔 두 팀이 준결승에 진출한다. 준결승과 결승은 각각 29일과 30일에 열린다.
▲ 기대 반, 걱정 반
MSC를 바라보는 LCK 팬들의 심정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LCK는 2013년 이후 2017년까지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등을 비롯한 국제 대회를 호령했다. 하지만 2018년과 지난해는 중국팀에게 롤드컵 왕좌를 내주는 등 위세가 다소 꺾였다.
MSC에 진출한 LPL 4팀이 올 시즌 정규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비등한 전력을 보인 것도 부담이다.
정규 시즌을 1위로 마친 IG는 플레이오프에선 4위 TES를 만나 1대 3으로 패했다. 돌풍의 팀으로 떠오른 JDG는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치더니 지난해 롤드컵 우승팀인 3위 FPX를 0대 3으로 완파했다. 결승전은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JDG가 TES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FPX와 IG의 3‧4위전은 FPX의 3대 0 승리로 마무리됐다. 선수들의 당일 컨디션, 팀 간 상성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릴 뿐 실질적인 전력 차는 크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LCK는 정규시즌에선 상위팀끼리 호각세를 보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선 T1이 DRX와 젠지를 각각 3대 1, 3대 0으로 완파하는 등 전력차가 도드라졌다.
▲ ‘재키러브’의 TES, ‘도인비’의 FPX
이번 MSC에서 한국인 선수가 없는 유일한 중국 팀인 TES는 걸출한 캐리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미드 라이너 ‘나이트’와 원거리 딜러 ‘재키러브’다.
‘나이트’는 2018년 LPL에 데뷔한 신인급 선수다. 하지만 지난해 FPX의 ‘도인비’ 김태상을 제치고 서머 시즌 정규리그 MVP를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췄다. 올해 정규 시즌에서도 KDA 5.3, 분당 대미지 509, 팀 내 대미지 비율 30%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지난해까지 IG에서 몸담았던 ‘재키러브’는 2018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다. 지난 시즌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며 기량 저하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올 시즌 TES와 계약한 뒤 투입된 정규시즌 3경기에서 모두 맹활약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정글러 ‘카사’, ‘나이트’에 대한 의존도가 심했던 TES는 재키러브 합류 후 더욱 안정적인 팀으로 변모했다. 걸출한 원거리 딜러를 보유하면서 중후반까지 경기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실제로 TES는 재키러브가 합류한 이후 경기 시간 30분이 넘어가는 14차례의 경기 중에서 단 3세트만을 패배했다. 경기가 무난히 후반으로 흘러만 간다면 ‘나이트’, ‘재키러브’ 두 딜러 라인이 제 몫을 다 해준다는 얘기다. ‘페이커-테디’를 보유한 T1과 흡사하다.
올라운더 정글러 ‘카사’ 역시 경계해야 될 선수다. 그는 커리어 동안 25개의 정글 챔피언을 사용하면서 KDA 4.0을 기록할 만큼 다재다능한 선수다. 메타에 휘둘리지 않고 유연하게 경기를 운영해 경기력에 큰 기복이 없다는 것도 그의 장점이다.
기복이 심한 탑 라이너 ‘369’는 TES의 아픈 손가락이다. 369는 유독 큰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해에도 정규시즌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더 샤이’ 강승록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2019 리프트 라이벌즈, 2019 롤드컵 선발전에서도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국제무대 울렁증'을 이어갔다.
지난해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FPX는 ‘도인비’ 김태상이라는 걸출한 지휘관을 보유한 팀이다. 그는 넓은 챔피언 활용폭을 바탕으로 협곡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즐기는 선수다. 노틸러스 등의 유틸성이 좋은 챔피언을 선택해 판을 까는 역할도 곧잘 해낸다. 올 시즌엔 ‘트위스티드 페이트’, ‘갈리오’ 등의 픽을 활용해 합류전 구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성향이 FPX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김태상의 창의적인 시도가 오히려 판을 뒤엎는 경우다. 판단을 잘못 내리면 함께 자멸하는 구도가 자주 연출된다.
본인도 인정한 바 있듯, 김태상은 피지컬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경기가 무난하게 흘러가면 FPX가 상대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물론 ‘칸’ 김동하의 기량이 정상궤도에 오르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이다.
올해 FPX로 이적한 김동하는 정규 시즌에선 팀과 합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나 IG와의 3-4위전에서 맹활약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피오라, 오른을 꺼내 세계 최고의 탑 라이너로 평가 받는 강승록을 그야말로 압도했다. 김동하가 기량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간 ‘미드-바텀’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던 FPX의 운영 선택지도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FPX는 이번 MSC에서 김동하의 전 소속팀인 T1과 같은 A조에 속해 있다. T1은 신인 ‘칸나’ 김창동이 칸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우면서 LCK 우승을 차지했다. 칸과 칸나, 두 선후배간의 맞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 안정적인 JDG, 호전적인 IG
JDG는 ‘카나비’ 서진혁이 몸을 담고 있는 팀으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JDG는 여느 중국 팀과는 다른 색채를 지닌 팀이다. 잦은 교전과 난전을 즐기는 중국 팀들과 다르게 정규시즌 경기당 평균 데스가 9.4에 불과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JDG는 초반 성장을 도모하면서 후반을 바라본다. 굳이 LCK 팀과 비교하자면 T1과 색깔이 비슷하다. 분당 CS 개수가 32.6, 분당 골드 격차가 +175로 모두 리그 1위다. 위험 부담을 최대한 줄이면서 게임에 임하다가 기회가 보이면 싸움을 열고, 스노우볼을 크게 굴린다.
JDG의 핵심은 서진혁이다. 지표가 크게 도드라지진 않지만 넓은 챔피언 폭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그는 이번 시즌 36세트에 출전해 13차례나 MVP를 받았다. JDG가 12승 4패로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하면서 정규 시즌 MVP에도 올랐다.
하지만 그만큼 서진혁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것이 JDG의 약점이다. ‘야가오’와 ‘로컨’ 이동욱, ‘줌’ 등의 라이너들은 라인전 및 교전에서 이렇다 할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서진혁의 발을 묶는 것이 JDG 공략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샤이’ 강승록과 ‘루키’ 송의진이 몸담고 있는 IG는 중국 리그의 간판과도 같은 팀이다. IG가 지난 몇 시즌간 보여준 호전성이 지금의 중국 리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IG는 올 시즌 경기 당 평균 16.4킬을 기록하며 리그 2위를 기록했다. 데스 역시 많았다. 경기당 15개로 리그 4번째였다.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을 지닌 것이 IG의 팀 컬러다.
초반 성장을 도모하는 JDG가 경기 당 2.67(4위) 마리의 드래곤을 사냥하는 반면 IG는 경기 당 평균 2마리(15위)의 드래곤만을 사냥했다. IG는 드래곤을 사냥하기보다 강한 라인전 능력으로 격차를 벌린 뒤 타워 골드를 획득하고,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눌렀다. 오브젝트에 집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전을 유도해 승리하다보니 자연스레 평균 경기 시간도 30분09초로 가장 짧다. 후반 지향적인 T1, 젠지 등의 LCK 팀들이 상대하기 분명 껄끄러운 상대다.
물론 교전에서 삐끗하는 순간 회복이 불가능하단 점은 약점이다. IG는 플레이오프에서 1승 6패로 고전했다. 라인전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슈퍼 플레이’가 될 수 있었던 강승록의 과감한 시도는 거듭 ‘스로잉’이 됐다. 강승록의 컨디션이 이번 대회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지만, 팀 곳곳에 약점이 많아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기에는 부족한 팀이라고 평가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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