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건강을 유지하는데 왜 장내 미생물이 중요한가

[진료실에서] 건강을 유지하는데 왜 장내 미생물이 중요한가

기사승인 2020-05-28 11:19:14

글 · 정상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암병원장 

우리는 다양한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 건강도 많은 정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태아를 보호하는 태포의 틈이 생기자마자 박테리아 등의 정착이 시작된다. 100% 인간 세포로 구성되었던 태아에 수많은 미생물이 정착됨에 따라 세포 수의 비율이 10% 인간세포, 90% 미생물로 유전자 정보가 구성된다. 10조 개의 인간 세포와 90조 개의 미생물 세포로 이뤄진 우리는 미생물에게 몸을 빌려주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 유전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비슷한 생활습관을 지니고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2018년 ‘Nature’에 소개된 통계분석에 따르면 홀로바이옴((holobiome, 전체 미생물)의 일부인 장내 미생물 유전체가 여러 가지 요인으로 형성되고 당뇨, 비만 등 건강 문제를 더 잘 예측한다. 장내 미생물은 소화가 안 되는 음식물을 쪼개고, 에너지를 만들고, 비타민을 생성하고, 독이나 약을 분해하고 면역체계를 훈련시킨다. 

장내 미생물의 변화는 비만, 영양실조, 신경질환, 우울증, 만성 장 질환, 만성 신장 질환, 암, 노화 현상과 관련 있다. 이것은 주로 면역체계의 변화 때문인데, 우리 몸 면역체계의 80%는 장에 있다. 태아의 박테리아는 대부분 엄마의 산도와 장에 살던 미생물이다. 이들이 다음 세대로 번식하는 데는 20분 정도 걸리고 장에 정착하여 안정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3년이 걸린다. 

100세 이상의 건강한 노인들의 장내 유익균은 건강한 30대와 유형이 비슷하다. 나이가 들면 현저히 감소하는 루미노코카시에, 라크로스피로시에, 박테로이데스균이 풍부하다. 건강과 수명을 결정하는데 다양한 미생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만일 장내 미생물균 유전체를 다시 젊게 만들 수 있다면 우리 몸도 젊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적절한 영양섭취와 우리 몸속의 미생물 유전체가 어떻게 일하는가에 달려있다. 

나쁜 미생물은 몰아내고 좋은 미생물이 장을 튼튼하게 만들도록 유도하면 영양소 결핍이 사라진다. 장내 유익균이 음식을 소화하는 동안 세포 내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영양분을 분해·소화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일 이외에도 세포 분화, 성장과 소멸을 담당하는 등 소화 과정과 암의 발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해한 물질이라도 소량만 있으면 오히려 생명체에 유익한 결과를 주는 현상을 호르메시스(Hormesis)라고 한다. 즉 사람은 스트레스가 없으면 좋은 것 같지만,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오래 살 수 있다. 나쁜 미생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설탕, 지방, 패스트푸드와 같은 음식을 갈망하게 만들고 우리를 살찌게 하고 염증을 일으키고 피로하게 만든다. 심지어 심장병, 자가면역질환, 근골격질환, 알츠하이머병, 암도 유발한다. 그러므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장내 미생물에 독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광범위한 항생제는 장내 미생물에 최대 20년까지 영향을 준다. 항생제를 복용할 때마다 노년기에 크론병, 당뇨병, 비만, 천식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가 즐겨 먹는 소고기는 사육을 위해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먹인다. 따라서 육류나 유제품, 동물성 식품을 먹으면 항생제도 함께 먹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비만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채식주의자 또한 문제가 만만치 않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채소 이외에는 모든 음식에 글리포세이트가 들어있다. 이는 2015년 WHO에서 발암물질로 분류된 바 있다. 태아의 건강을 생각하면 임산부들에게는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글리포세이트는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만드는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에도 영향을 주므로 우울증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장에 막대한 손상을 입히는 또 한 종류의 약제는 잔탁, 넥시움 등 양성자 펌프억제제와 같은 위산 완화제다. 이들은 치매 발병률과 상당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2주 이상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아스피린, 타이레놀, 이부프로펜, 에드빌 같이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는 오히려 장 누수 현상을 일으켜 장내 면역을 나쁘게 한다. 

일상 속에 흔히 사용하는 비누, 손 세척제 등 위생용품의 원료인 트라이클로산 등 항균성 물질 또한 장내 유익균을 죽이고 간 기능을 떨어뜨려 비타민 D를 불활성화시킨다. 이는 칼슘 흡수를 방해하고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과(過) 설탕 시대에 살고 있다. 설탕은 나쁜 미생물을 증식시킨다. 설탕 대체재나 당분이 높은 과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당분을 피하고 육류 섭취를 줄이며 제초제를 쓰지 않는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 다양한 장내 미생물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