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식품업계 ‘깡’ 패러디에 들이대는 두 가지 잣대

[기자수첩] 식품업계 ‘깡’ 패러디에 들이대는 두 가지 잣대

기사승인 2020-05-29 05:00:00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패러디와 표절, 오마주와 모티프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 기준에 따라 원작자에게 존경을 표하는 헌정의 작품이 되기도, 반대로 원작자에 대한 악의가 가득한 가짜가 되기도 한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 있어서는 그 기준이 대부분 명확해져서 법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반면 근래에는 퍼블리시티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패러디와 표절의 차이라기보다는 민의(民意)의 잣대가 그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국과는 달리 퍼블리시티와 관련된 판례가 없는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가수 비가 2017년 발매한 앨범 ‘MY LIFE愛’에 수록된 ‘깡’이라는 노래가 회자되고 있다. 한 유튜브 채널에 여고생이 해당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것을 계기로 온라인상에서 ‘밈(MEME)’화가 됐다. 밈이란 온·오프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는 콘텐츠를 의미 없이 소비하는 것으로 유행어나 패러디 등을 통칭한다. 

시작은 멸칭과 조롱에 가까웠지만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비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차분하고 의연하게, 그리고 오히려 재미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면서 이 밈은 트렌드로 변화했다. 온라인 한 켠에서 의미를 아는 사람들만 주고 받았던 유행어가 단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논란은 이같은 트렌드를 식품기업들이 차용하면서 벌어졌다. 최근 농심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자사 제품인 새우깡, 고구마깡, 감자깡 등을 등장시킨 깡 패러디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와 함께 가사를 인용한 글귀도 첨부했다.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해당 게시글의 좋아요 수는 약 4000여개로, 비슷한 시기에 업로드된 ‘라면의 세개(부부의 세계 패러디)’ 게시글의 두 배를 상회한다. 

반면 같은 내용을 다룬 롯데칠성음료의 ‘깨수깡’은 혹평이 쏟아졌다. 롯데칠성음료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 역시 가수 비로 분장한 누군가가 깨수깡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깡’ 폰트를 강조해 패러디임을 분명히 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티스트의 허락 없이 막 써도 되느냐’는 질책이 이어졌고 결국 롯데칠성음료는 해당 게시글을 내렸다. 이후 해당 내용에 대해 면밀이 검토하지 못했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동일한 가수의 노래를 활용한 패러디였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은 달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패러디한 아티스트를 실제로 등장시켰느냐의 여부였다. 

저작권법상 성공한 패러디는 원작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하며 비상업적 목적에 가까워야한다. 또 원저작물이 유통되는 시장의 잠식 우려가 작아야한다. 그러나 이 세가지 항목에서는 농심과 롯데칠성음료 모두 ‘완벽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유명인이 자신의 성명이나 초상 등을 상품 선전에 허락하는 ‘퍼블리시티권’을 기준으로 두더라도 마찬가지다.

항간에는 ‘원작을 알면 패러디, 원작을 알리는 건 오마주, 원작을 감추려는 건 표절’이라는 말이 있다.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법적·도의적 문제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시대 흐름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한 패러디가 될 수도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게시글이 원작을 감춘 ‘표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롯데칠성음료의 패러디는 어느 부분에서 민의의 역린은 건드린 것일까. 결국 글은 내려갔고, 며칠 뒤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잊혀질 일이다. 합(合)과 불(不)을 나눈 것은, 소비자들이 농심과 롯데에 들이대는 잣대의 차이였다.

akgn@kukinews.com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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