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일에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오늘 이 순간부터 고통 받는 인류의 복지와 행복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환자의 인격을 존중하며 평등·호혜의 봉사정신을 발휘하겠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인류를 위해 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렇게 한없는 헌신을 약속하는 ‘나’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네 문장은 순서대로 ▲의사의 제네바 선언 ▲간호사의 나이팅게일 선서 ▲약사의 디오스코리데스 선서 ▲한의사 윤리강령의 발췌문이다. 세대를 거듭해 전해져 내려온 의료인들의 직업윤리는 독특하다. 전후 맥락 따지지 않고 생명은 일단 살리고 본다. 돕겠다는 의지가 개인의 권위와 재산 축적 욕구를 압도한다.
이 같은 직업윤리를 실현해 우리나라를 살린 의료인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적잖은 의료인이 식민통치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의술로 생명을 구하는 동시에 광복을 앞당겨 국가를 구한 의사·간호사·약사·한의사를 되짚어 본다.
최정숙(1902~1977년) 의사는 경성여자의과전문학교 출신 의사다. 최초 여성 교육감을 지냈다.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했던 1919년, 18세였던 최정숙은 학우 79명과 소녀결사대를 조직해 3·1일 만세 운동에 합류했다. 결사대의 주동자로 일본 헌병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같은 해 11월6일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39년 38세에 경성여자의과전문학교에 입학해 1943년 1회 졸업생이 됐다. 이후 고향인 제주도에 정화의원을 개원하고 빈곤한 환자들을 진료했다. 제주 유일 여성교육기관인 신성여학교 개교 준비를 주도했으며, 해방 후 1953년 신성여자고등학교를 개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감으로,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제주도 초대교육감을 지냈다.
박자혜(1895~1943년) 간호사는 1914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기예과를 졸업, 이듬해 조선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 간호부과에 입학했다. 1917년부터 조선총독부의원 간호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동료 간호사·조산사들과 항일운동 조직 간우회를 조직하고 파업·태업을 주도했다.
간우회 활동이 발각되자 1920년 베이징으로 이주해 연경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했다. 베이징에서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과 혼인, 1922년 서울로 돌아온다. 독립투사들의 연락과 잠입을 도왔으며, 1926년에는 의열단 소속 나석주 열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의거를 지원했다.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1918년 설립된 국내 최초 약학대학이자,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전신인 조선약학교에서는 15명의 독립투사가 배출됐다. 김유승, 김광진, 박준영, 박병원, 박흥원, 박희창, 오충달, 전동환, 김정오, 강일영, 김용희, 이인영, 정태화, 이용재, 김공우 등 학생들은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이들은 경성지방법원에서 심문을 받았으며, 일본 경찰이 작성한 이들의 일제 감시대상인물카드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심문 당시 김공우(1902~1966년) 열사는 18세로, 함께 심문을 받은 학우 가운데 최연소자로 알려졌다. 그는 같은해 6월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사후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강우규(1855~1920년) 한의사는 함경남도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한의사로 활동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듬해 북간도 두도구로 이주했으며, 2015년 다시 북만주 길림성 요하현으로 이주했다. 요하현에서 항일독립운동기지를 설립하기 위한 한인동포 마을 신흥동을 건설하고, 한인 학교인 광동학교를 세운다. 독립운동 단체 대한국민노인동맹단 요하현 지부장을 지냈다.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된 일본 군인 사이토 마코토의 조선총독 취임식에 잠입해 폭탄을 투척했다. 그러나 의거는 실패했고, 2차 거사 계획 중 친일파 순사 김태석에게 체포됐다. 이듬해 2월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고, 같은 해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사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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