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LG·SK 배터리 소송의 역할

[기자수첩] LG·SK 배터리 소송의 역할

기사승인 2020-09-09 06:00:35
[쿠키뉴스] 임중권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양사가 주고받는 ‘말 폭탄’의 무게는 심상찮다. 그러나 격화된 언쟁에도 LG화학 쪽으로 승부가 기우는 모양새다.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올해 10월이 최종판결이다. 최근에는 한국 법원이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등의 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 분쟁과 관련해 양사의 합의가 중단됐다는 풍문도 들린다. 현재 LG화학은 합의금을 수조 원을,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제시한 금액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을 합의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네 슈퍼에서 100원이 부족해도 계산을 안 해주는 마당에, 작게는 수백억, 크게는 수조 원의 돈이 오가는 대기업 간 합의가 쉽사리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그러나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예비 판결이 유지되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미국 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예비 판결이 뒤바뀐 적은 없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막판뒤집기’ 혹은 ‘원만한 합의’ 둘 중 하나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LG화학 역시 장기화된 소송에 대한 피로감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첨예한 양사 간 갈등에도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듯 가야 할 길이 분명한 상황에 일각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 간 소송으로 국익이 훼손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경쟁력이 하락해 영업활동이 불리해지고 중국·유럽 업체 등 경쟁사에 추격할 기회를 준다는 망상이다.

이들은 정부가 양사 갈등에 개입해야 한다는 견강부회(牽强附會)도 한다. 기업들이 이미 협상에 나선 상황에 설익은 훈수가 양사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새다.

어설픈 훈수와 달리 양사 간 소송에도 국내 배터리 3사는 소송 기간 급성장했다. 또한, 정부의 개입은 소송전이 아닌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자국 ‘산업 감싸기’를 저지하기 위해 절실한 상황이다.

먼저 배터리 전쟁의 서막은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한 지난해 4월이다. 그런데 지난해 대비 올해 한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글로벌 점유율은 파죽지세로 치솟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점유율은 LG화학 25.1%, 2위 삼성SDI 6.4%, SK이노베이션 4.1%다.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사별로 97.4%, 52.6%, 86.5%로 급성장했다. 특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2배 가까이 급성장했다.

사실 법적 소송은 영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완성차 고객은 품질과 가격 등의 기준으로 배터리 공급사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업계 1위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잔고는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110조원에서 2019년말 기준 150조원으로 9개월간 40조원이 증가했다. 배터리 업체 간 소송이 영업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증거다.

국내 배터리 업체 간 소송이 중국 배터리 업체 등 후발 주자에 기회를 준다는 주장도 그들이 성장해온 배경을 따져보면 어안이 벙벙한 소리다.

중국 CATL이 빠르게 성장한 이유는 2가지다.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한 중국 정부의 비호와 한국·일본의 배터리 인력 대거 채용이다. CATL의 성장 방식은 유럽 신생 업체인 노스볼트와 판박이다. 이들은 LG화학과 파나소닉 등 배터리 선두 업체의 인력을 채용해왔다.

‘G2’인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자국 산업 감싸기’는 한국 입장에서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중국의 자국 산업 비호는 국영사의 지분 참여, 출자전환이나 채무 포기 형식의 채무변제와 보조금 지원 등 매우 조직적이고 다양하게 이뤄진다.

한국이 통제 불가한 중국의 자국 기업 비호와 달리 무분별한 배터리 인력 유출은 최소화할 수도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통해서다.

실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국내 배터리 인력을 노리는 업체들에 확실한 선례가 되고 있다. 조기패소 판결이 나자마자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노스볼트는 홈페이지에 ‘LG화학과 파나소닉 출신 우수인력 채용’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아울러 국내 배터리 업체에서 중국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확연히 줄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직을 통한 영업비밀 탈취가 범죄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혔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은 국내 업체 대비 85%다. 특히 하이니켈 배터리 기술에서 삼성SDI 등 국내 기업들이 앞서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법적인 선례를 통해 국내 배터리 인력을 지켜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국내 업체 간 다툼이니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해외 경쟁사들이 이를 쉽게 악용해 30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한국의 배터리 기술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한국이 중국 등 경쟁국에 ‘기술 도둑질’을 당한 사례는 완성차와 조선업,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업계별로 하나하나 꼽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많다.

소송은 법원에 맡기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중국 전기차 보조금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난 2016년 말부터 중국은 외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않고 있다. 당시 중국 다수 완성차업체의 계약을 체결했던 LG화학과 삼성SDI는 순식간에 수십조 원의 수주 금액을 날렸다.

최근 몇 개의 중국 전기차 모델은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하고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테슬라 전기차를 제외하고는 극소수다. 게다가 최근 한국산 배터리의 빠른 성장으로 위기감을 느낀 중국 정부는 2020년 일몰 예정이던 보조금 제도를 2022년까지 연장하며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다.

이에 반해 서울시는 과거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 버스에 대거 보조금을 줘 이미 논란이 됐다. 산업부가 여러 차례 중국 전기차 보조금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 협의에 나섰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물론 몰상식한 중국을 상대로 불공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이 중국 배터리 업체에 송두리째 넘어가는 걸 손 놓고 보기만 해서도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만약 국내 배터리 업체 간 소송을 중재할 여력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중국 보조금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국익을 위한 처사다. 한 발자국이라도 기술력이 앞섰을 때 세계 절반인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만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미래에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im9181@kukinews.com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
임중권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