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저는 아직 탈코르셋을 하지 못했지만”

[유니프레스] “저는 아직 탈코르셋을 하지 못했지만”

“페미니즘 아래서 좀 더 너그러워야”

기사승인 2020-11-10 15:34:06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장혜윤 서울여대학보 기자 = 수업 시간, 탈코르셋을 주제로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다. 여대인 탓일까, 굳이 여성학 수업이 아니더라도 강의실에서 우리의 몸이나 외모에 대해 토론할 일은 숱하다.

이런 주제가 던져지면 학우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발언을 할 때면 몇몇 학우들이 이런 말로 입을 뗀다. “저는 아직 완전히 탈코르셋을 하지는 못했지만…”

왜일까. 우리는 탈코르셋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자 하는 자리에서조차 그런 말로써 자신을 한걸음 뒤로 무른다.

강의실 안 사람들이 탈코르셋을 생각하는 관점은 모두 다르다. 탈코르셋을 한 사람도, 탈코르셋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원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관점이 어느 곳에 있는지만으로 페미니즘을 논할 자격이 충분한지 재단한다.

페미니즘은 20대 여성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페미니즘이라는 신념 아래 다시 자신을 재단하고 고통받는다. 그 신념은 여성에게 선택과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여성은 아름답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고 고통받았다. 이제는 자기 자신과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바람직한 여성 사이의 괴리에 고통을 느끼며 거듭하여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다. 그 죄의식을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는 다름 아닌 개인 여성 자신이다.

남성은 꾸미든 꾸미지 않든 죄책감을 느낄 일이 없다. 전자는 ‘그루밍남’라는 수식이 붙고, 후자는 ‘털털하고 쿨한 남자’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런데 왜 여성은 꾸며도, 꾸미지 않아도 그 각자대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이른바 ‘탈코’를 하면 혹자로부터 ‘꼴페미’라던가 ‘메갈’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여성들에게 여권을 저해하는 사람으로 비난받는다. 과연 남성은 이런 고민을 헤아릴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중년 남성에게 체중에 대한 내 집착과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두 주제의 상관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이해시키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당신 개인 만족의 문제가 아니냐”는 말에 허탈감이 깊어졌다. 여남은 너무도 다른 처지에 있다. 공감은커녕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논의나 문제의 개선에 참가하지도 못한다. 이렇게 세상의 한 면은 또 여성에게만 골이 깊어진다.

탈코르셋을 해도, 하지 않아도 고통받는 기이한 상황이다. 여성들은 페미니즘 안에서조차 완벽을 추구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의 심리도 그러하다. 한 여성을 쉽게 페미니즘의 왕자에 올려 앉혔다가 그 여성이 단 한 가지 잘못을 하면 너무도 쉽게 끌어내려 처단한다. 애초에 페미니즘이나 탈코르셋은 여성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함이지 다른 이상적이고 완벽한 여성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페미니즘 아래에서 우리는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사실 “저는 아직 완전히 탈코르셋을 하지는 못했지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나다. 나는 언제나 탈코르셋에 대한 죄의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난 머리가 길고, 화장을 하고, 마른 몸을 열망해 체중에 집착한다.

화장을 하는 내게 “솔직히 말해 네 행동은 여권 신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후퇴시키는 일이라는 걸 알아두라”던 친언니의 말을 들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강력히 말하고 주장하던 그 신념을 스스로가 저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여파는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페미니스트다. 내가 치마를 입는다고 해서 그 사실이 달리지는가? 귀걸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실이 달라지는가? 그렇다면 완벽한 페미니스트의 외모는 무엇일까? 페미니스트는 모두 같은 모습을 해야 할까?

탈코르셋이 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족쇄로 자리 잡는 것을 반대한다. 이미 우리에겐 너무나도 많은 족쇄가 채워져 있다. 여성의 자유를 위해 세워진 페미니즘이 또다시 바람직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가르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리고 ‘탈코를 하지 못한 나’에 죄책감을 느낄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페미니스트다. 

[유니프레스]는 쿠키뉴스와 서울소재 9개 대학 학보사가 기획, 출범한 뉴스콘텐츠 조직입니다. 20대의 참신한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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