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답하다]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법’, 성폭력 피해 고발도 불법되나요

[댓글에 답하다]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법’, 성폭력 피해 고발도 불법되나요

기사승인 2020-11-25 06:10:21
▲사진=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편집자주] ‘댓글에답하다’는 독자가 올린 댓글을 기자가 취재해 ‘팩트체크’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을?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법’이 통과된다면, 성폭력 피해 고발도 처벌받나요 

-어떻게? 복수의 성범죄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결과는? 성폭력 피해 고발을 위한 녹음은 처벌받지 않는다

[쿠키뉴스] 정유진 인턴기자 =여당에서 발의한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법’에 대한 찬반 토론이 뜨겁다. 이 가운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기 위해 녹취한 행위가 불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성관계 음성 녹음이 상대방을 협박하거나 불법촬영물의 용도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성범죄로 규정하겠다는 취지다. 현행법은 단순 녹음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이 없는 상태다. 카메라 등을 통해 성관계를 동의 없이 촬영한 경우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휴대전화, 녹음기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녹음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또 돈을 벌 목적으로 배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음성물로 협박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했다.

해당 법안에 대한 반응은 양극단으로 갈렸다. 24일 오후 8시 기준 국회 입법 예고 홈페이지에는 2만7180개 이상의 의견이 등록됐다. 여성들은 입법에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여태까지 불법이 아니었다는 것이 오히려 충격적”, “촬영이 불법임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인데 녹음이라고 크게 다를 게 있을까”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반면 남성들은 무고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진다며 분노했다. “유죄추정의 원칙이 들어가는 성범죄 문제에서 확실한 증거는 녹음뿐”, “남성을 성범죄자 만드는 법”이라는 비판도 잇달았다.

▲사진=서울고등법원 전경/쿠키뉴스 DB

이 가운데 해당 법안이 여성의 성폭력 고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네티즌이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성폭력을 고발하기 위한 녹음조차 불법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다. 국회 입법 예고 홈페이지에 찬성의견을 낸 한 시민도 “피해자가 녹음 자료를 피해 증거로 제출했을 경우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세부사항도 추가해달라. 역으로 가해자가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통과돼도 피해자가 처벌받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검사 출신의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법률안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음성’으로 규정한다”라며 “범죄 피해자가 증거 확보를 위해 녹음한 경우는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기 위해 녹음하는 경우가 아니므로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도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한 사유라면 ‘위법성 조각’으로 인정이 돼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법 논리로도 그렇다. 부득이하게 긴급한 사유가 있었다면 (카메라를 통한 촬영을 해도) 위법성이 없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해자의 무고를 입증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우려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오 변호사는 “성관계 시 녹음을 하면 (성범죄의) 무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재판에서는 녹음 여부로 무고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양 변호사 역시 “성폭력 여부는 사건 앞뒤 맥락, 양 당사자 간 관계 등을 법원이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법률안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무엇일까.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상담 사례 중 재판에서 녹음을 근거로 합의하 성관계를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 변호사는 “남성이 여성을 준강간할 때 여성이 정신이 있었다는 증거로 녹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런 사례를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하지 말라는) 경고는 할 수 있겠다”라고 내다봤다.

ujiniej@kukinews.com
정유진 기자
ujiniej@kukinews.com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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