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 코로나로 멈춘, 공수처로 격변한 2020년

[송년기획] 코로나로 멈춘, 공수처로 격변한 2020년

이면에 도사린 공정·정의·법치의 파괴… “2021년은 다를까” 낙담도

기사승인 2020-12-31 08:00:03
정치의 중심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2020년을 관통하는 단어로 대학교수 906명 중 32.4%가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를 꼽았다.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륜)의 한자표현이다. 2번째로 많은 답변(21.9%)은 ‘후안무치(厚顔無恥;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였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난 2020년, 멈춰버린 일상에 대한 첫 경험으로 신음하는 국민을 외면하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필두로 정치적 이해타산에 매몰돼 극렬히 대립한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는 대학교수들의 일침이다.

또한 이들의 일침은 한해 정치권을 돌아본 정치평론가들의 의견과도 일맥상통했다. 평론가들은 20대 국회가 끝나고 21대 국회가 열린 해인 2020년은 예상된 변화를 뛰어넘는 격변과 갈등의 시기였다고 총평들을 내놨다. 

특히 4·15 총선 전·후로 정치계가 뒤집혔고, 퇴보했으며 실망스러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사회 전반으로는 코로나19가 무겁게 일상을 짓눌렀던 한해지만, 정치적으로는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많았다”면서 “민생을 위해 해법을 찾아가는 정치의 변화를 기대하고 고대했지만, 내년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꼽은 굵직한 사안들로는 20대를 끝내며 정치적 갈등을 극단으로 몰고 간 공수처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그에 따른 비례위성정당의 출현과 180석 거대여당을 탄생시킨 총선을 들었다. 바뀐 21대에서는 민주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과 그로인해 벌어진 부동산 및 권력 재편 등 각종 개혁입법의 강행처리, 4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쟁반에 올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앞둔 지난 9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수처법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그리고 일련의 주요 사안들의 결과를 대부분 ‘실패’로 평가했다. 당장 올해를 뒤덮은 공수처 논란은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투명하고 철저하게 밝혀내달라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공수처가 어느새 야당의 비토권(거부권)마저 사라진 일방을 위한 거대권력, 친정권 인사들이 발 뻗고 잠잘 수 있는 배경이 돼가고 있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소수정당, 소수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며 20대 국회 말 격렬한 충돌 속에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금의 야당이 만든 ‘미래한국당’과 여당이 참여한 ‘더불어시민당’ 등 총선용 위성정당이란 편법을 탄생시켰다. 결과적으로도 거대 ‘양당’ 나아가 거대 ‘여당’ 체제를 만들었고, 제3의 교섭단체가 존재했던 20대 국회보다 의견의 쏠림이 심해지며 정치적으로 ‘퇴보’했다.

이어진 21대는 사실상 여당의 ‘독주’로 점철됐다. 교수들의 ‘아시타비’란 평가도, 여기에서 도출됐다. 178석으로 시작한 민주당은 부동산 논란에 휩싸인 양정숙·김홍걸 의원과 이스타항공의 경영악화를 두고 불법·부당 행위의혹을 받은 이상직 의원 등 ‘탈당’이란 ‘꼬리 자르기’를 감행해 의석이 줄었음에도 174석과 모든 상임위원장을 확보해 입법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양보와 절제, 소통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질은 사라졌다는 평가다. 배 소장은 “21대는 거대여당이 탄생하며 한 쪽으로 힘이 기울었고, 어느 때보다 여당의 양보와 야당의 타협이란 조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둘은 절묘한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합의나 협치는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입법독주를 둘러싼 ‘상처주기’도 난무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의혹의 여진이 이어지며 후임으로 온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황제휴가’ 논란부터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 개인적 문제부터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으로 비춰진 수사권 발동과 징계요구, 법원의 판결과 추 장관의 퇴진이란 결말로까지 이어진 사회적 소모가 발생했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와 교육수호연대 등 학부모단체 회원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특혜휴가 의혹을 처음 제기한 당직 사병 현모씨의 실명을 공개한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 검찰고발 및 추 장관 사퇴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태현 기자

이 과정에서 검언(檢言)유착, 정검(政檢)유착 등의 의혹도 불거졌고, 기자·검사·정치인·기타 관계인들이 수사선 상에 올랐고 옷을 벗었다. 오거돈·박원순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의 성비위 문제와 ‘n번방’사건으로 드러난 실체도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충돌과 입법강행의 결과는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짐’이 되기도 했다.

재난지원금·기본소득이란 시대적 화두를 던지며 진행된 4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낙태죄 폐지에 관한 법원의 판결과 정치권의 외면에 따른 입법공백, 안전한 퇴근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에도 형식과 절차로만 다투는 정치권의 모습에서도 전문가들과 교수들은 실망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공정과 정의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된 배경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를 두고 한 대학의 신문사 편집장은 “공정사회를 만드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어디까지를 룰에 포함할 것인가, 공정경쟁의 조건은 무엇인가 등 공정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성세대의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이 거짓이 아니라면 정쟁을 멈추고 토론해야 한다. 지금도 아이들은 불공정을 몸에 익힌 청년으로 자라고 있다”고 꼬집었다.

배 소장도 “여당이 주도하는 방향도, 야당의 대응도, 국회의 운영방식도 (21대 들어) 진영간 대결구도가 강해 생산적이거나 효율적이라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치혐오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중도층이 더 부각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양당정치에 대한 혐오, 소수의 배려가 배제가 된 현실은 정치발전에 긍정적인 과정으로 보긴 어렵다”고 봤다.

이어 “정치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책생산의 과정과 절차, 법안통과 시기 등을 조율하고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수결의 논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정책, 화두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보장되면서도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위해 과정의 성숙함, 시기의 적절함, 절차의 합리성을 다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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