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세자매’는 왜 그런 말을 할까 

[쿡리뷰] ‘세자매’는 왜 그런 말을 할까 

기사승인 2021-01-19 08:00:03
▲사진=영화 ‘세자매’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하는 순간이 있다. 말에는 위악이나 위선을 덧씌우기 쉽지만, 순간의 눈빛까지 감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승원 영화 감독의 영화 ‘세자매’에 등장하는 세 자매가 각자 하는 말들이 그렇다. “언니가 늘 기도하는 거 알지?” “내가 미안하다” “나는 쓰레기야” 세 자매는 주문처럼 이 같은 말들을 외며 각각 전혀 다른 삶을 산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하는 말뿐만 아니라, 이들의 눈빛을 마주한다. 찰나에 스치는 감정과 기억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담아낸다. 평범한 듯 문제적이고 문제적인 듯 평범한 세 자매는 왜 완벽한 척하거나, 괜찮은 척하거나, 안 취한 척을 하게 된 걸까.

‘세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과정을 그린다. 세 자매 중 둘째 미연(문소리)은 완벽해 보이는 인생을 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고, 교수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있다. 얼마 전 신도시 새 아파트로 이사도 마쳤다. 그러나 이렇게 티끌 하나 없어 보이는 그는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다. 

꽃집을 운영하는 첫째 희숙(김선영)은 집을 나가 돈만 요구하는 남편(김의성)과 반항하며 대드는 딸 보미(김가희) 때문에 속이 곪는다. 하지만 그는 늘 먼저 사과하고 먼저 고개를 숙인다. 남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폭언에도 옅은 미소만 짓는다. 셋째 미옥(장윤주)은 언제나 취해 있다.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인 그는 하루하루 술과 함께하며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배우자인 상준(현봉식)과 의붓아들을 당황케 한다. 

▲사진=영화 ‘세자매’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세 자매의 삶을 교차해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사라기보다 상황에 가깝다. 서로 다른 성격만큼 다른 상황에 놓인 세 자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비춘다. 늘 온화한 말투로 ‘주님’을 찾는 미연은 완벽함에 집착하는 완강함을 보이고, 희숙은 차라리 화를 내면 좋을 것 같은 상황을 자신을 하염없이 낮춰가며 지난다. 밑도 끝도 없이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미옥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미워하기도 힘든 구석이 있다. 각자 다른 결과 방향으로 흐르던 자매의 삶이 겹치는 순간은 때때로 미옥이 술을 먹고 미연에게 전화해 아무말이나 늘어놓으며 과거의 기억을 찾을 때뿐이다. 

그런데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대화가 쌓여 궁금증을 유발한다.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의 조각이 무엇일지 돌아 보게 하는 것이다. 파편 처럼 제시되는 세 자매의 삶을 보고 있자면 결국 이 보통의 문제들이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 궁금해지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들이 공생했던 과거로 향한다. 영화는 이 미묘한 궁금증을 동력 삼아 나아간다.

잔잔한 분위기로 출발해 담담히 흐르는 장면들을 보고 있다 보면, 퍼즐 같던 상황들은 어느새 모여 하나가 돼 있다. 영화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옛날 그때의 그 길로 세 자매와 관객을 인도한다. 다시 돌아온 과거의 집에서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던 그때의 기억들을 입 밖으로 꺼내게 한다. 고요함에 가까웠던 영화는 순간 폭발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눈빛과 위선 아니면 위악이던 말들은 이때 모두 해석된다. 공감하고 싶지 않지만 공감할 수 밖에 없어 불편한 순간이기도 하다.

밀도 있는 연출과 이야기도 훌륭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세 자매’의 놀라운 연기가 ‘세자매’를 완성했다. 오는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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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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