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2차 가해 천태만상…노동부 미온적 대처

‘직장 내 성희롱’ 2차 가해 천태만상…노동부 미온적 대처

한국여성민우회 2020년 일고민상담실 상담 사례 분석
고용노동부에 관리감독 강화 촉구

기사승인 2021-03-21 16:14:01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사회 내 직장 성희롱이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회사에 문제를 제기한 이후에도 여전히 회사나 주변으로부터 2차 피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이 낸 ‘2020년 주요 상담사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 197건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은 113건(57%)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58건), 부당 해고(14건), 기타 노동사안(9건), 성차별적 조직문화(2건), 임금체불(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보통 신입·수습·인턴 등 직급상 취약한 위치에 있는 하급자에게 자주 발생했다. 권력을 이용한 성희롱인 셈이다. 민우회에 접수된 사례 중에는 ‘3개월 수습기간 만료 직전에’, ‘입사 3일차 되던 날 전화로’,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경우가 있었다. 

성적 괴롭힘의 양태는 다양했다. “몸이 안 좋아 약국을 다녀오겠다고 하니 대뜸 콘돔 사러 가냐고 묻는” 등 언어적 성희롱을 당한 사례가 여럿 접수됐고, “회식 끝나고 차 안에서 춥다면서 계속 손을 잡는” 등 신체적 성희롱을 당해 상담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문제제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문제제기를 하자마자 ‘소송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거나, 가해자와의 원치 않는 ‘삼자대면’을 강요하는 회사가 있었다. 

또 동료나 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을 때 “‘왜 바로 신고를 안 했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되레 핀잔을 주거나 “가해자는 말이 다르니 우리는 판단 못 한다” “생각이 다르니 전 직원에게 공개해 의견을 듣겠다” 등으로 회피하는 사례도 많았다.

업무상 불이익도 당했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들은 부당전보·승진배제·저평가 등 고용상 불이익을 받았다. 회사는 피해자를 경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부서에 배치하거나, 합리적 기준 없이 저성과자로 몰아가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외부기관 신고를 결심한 피해자들은 주요 창구인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보여 어려움을 겪었다. 근로감독관이 ‘피해 상황이 한 번밖에 안 일어나서 성희롱이라고 판단 안 될 수도 있다’고 하거나, ‘녹음증거가 없으면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고 단정한 사례가 있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 사이의 판단이 엇갈려 피해자에게 혼란을 준 사례도 접수됐다. ‘근로감독관은 사건의 시간과 장소로 볼 때 사적인 만남이라 성희롱이 인정 안 될 것이라 했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시간이나 장소와 무관하게 성희롱에 해당할 것이라 판단’한 경우였다.

여성민우회는 “사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노동권을 침해하는 문제”라며 “일차적으로 고용노동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하고, 성희롱과 괴롭힘이 회사 구성원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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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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