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들이 경쟁사보다 1원이라도 더 싸게 팔겠다는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현장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모양새다. 이마트는 지난 8일부터 500개 가공·생활용품을 대상, 경쟁사보다 가격이 높으면 차액을 돌려주는 ‘최저가격 보상 적립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여기에 최근 롯데마트 등 경쟁업체가 반격에 나서면서 업계에선 지난 2007년 벌어졌던 ‘최저가 경쟁’이 다시 불붙고 있는 중이다.
이날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이마트가 내놓은 500개 생필품에 대해 5배의 포인트를 얹어주고 있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해당 제품들의 가격 역시 이마트몰에서 제시하는 가격보다 낮거나 똑같이 팔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서 롯데마트의 신라면(5개입), CJ햇반(10개입), 서울우유, 코카콜라, 삼다수(500ml, 20개입) 등의 가격을 이마트와 비교해본 결과, 라면 등에서 10원 정도의 차이가 난 것을 제외하곤 모두 가격이 같았다.
다만 체감상 할인폭이 크다고 느낄만한 제품은 많지 않았다. 1+1, 2+1 행사 상품들을 제외하면 할인율이 소비자들의 큰 호평을 이끌진 못했다. 서울역점 스낵 코너에서 만난 한 중년 주부는 ‘최저가 전쟁’이라는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육류 등이 싼 감이 있는데 이전에도 엘포인트 회원이면 이 가격에 구매가 가능했다”라며 “이외에 가공식품 등 상품은 엘포인트를 5배로 준다 해도 특별히 싼 가격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최저가격 보상 적립제’를 진행하고 있는 이마트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오후 찾은 용산점에도 '최저가격 보상 적립'이라는 스티커가 매대 마다 붙어 있었지만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소비자는 없었다. 장을 보던 열 명의 사람에게 말을 걸어 봤으나, 이마트 최저가격 보상제를 알고 있는 이들은 두 명에 그쳤다. 스마트폰으로 다른 온라인 경쟁사의 가격을 비교하며 가격표를 살펴보고 있는 이는 오직 기자 뿐 이었다.
용산점에서 장을 보던 김영순(55‧여) 씨는 “인터넷에 들어가서 비싸게 샀는지 일일이 확인하며 장을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로 느껴진다”면서 “가격 차이가 5000~1만원 정도 난다면 모를까, 100원 50원 정도의 가격 차이라면 평소 가던 집 근처의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 자동차 기름 값도 덜 들고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가격 비교 자체가 피곤한 일 이었다. 기자가 1시간가량 용산점에 머물며 쿠팡과 가격 비교에 나섰지만 판매 단위 등이 달라 애를 먹었다. 어렵게 당면이 쿠팡보다 비싸게 팔리는 것을 확인했다. 기자는 이날 이마트에서 오뚜기 옛날자른당면(300g)을 3580원에 샀다. 이후 쿠팡에서 3420원에 팔리는 것을 확인하고 다음날 아침 이마트 앱을 통해 160원에 대한 보상 신청을 했지만 '모든 상품을 최저가로 샀다'는 문구만 나왔다.
이마트 측은 미등록 상품에 대한 일시적 오류라고 해명했지만, 모든 물품이 제대로 가격 비교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외에도 쿠팡의 ‘로켓와우(유료 멤버십 회원)’ 가격은 이마트 최저가 비교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차액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문 경우에 한에서였다. 몇 백원을 아끼기 위해 딱히 이마트를 찾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일각에서는 대형마트 업계가 ‘최저가 전쟁’을 벌이는 이유를 쿠팡 견제에서 찾는다. 얼핏 보면 유통 라이벌 간의 대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형마트 업계 전체가 쿠팡의 가격 압박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생활필수품 특성상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큰 혜택을 누린다고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쿠팡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대형마트의 저가 경쟁에 계속 휘말려 들어야 하는 만큼, 매입 단가 유지 등 부담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증시 상장까지 성공한 쿠팡은 이달부터 로켓배송이 가능한 제품 100%를 무료배송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대형마트 업계의 최저가 전쟁은 서로 고객을 뺏어오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의 양상은 쿠팡 등 이커머스에 주도권을 넘기지 않으려는 오프라인 업체들의 주도권 싸움”이라며 “싸움이 길어지면 출혈 등 상호간 손해가 커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