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누구나 어린 시절엔 모험가였다. 정글에 뛰어들고 바다를 누비는 것만 모험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한 걸음이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개척이고 모험이다. 그것이 부모님이 싫어하는 것일 때, 그리고 친구와 함께 갈 때 설렘과 짜릿함이 커지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그걸 추억이라 부른다.
애니메이션 영화 ‘루카’(감독 엔리코 카사로사)는 인간들에게 ‘바다 괴물’로 불리는 두 소년이 물 밖 세상으로 나와 떠나는 모험담을 그렸다. 인간들을 조심하라는 부모님 말을 듣던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우연히 만난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에 이끌려 바깥세상을 구경한다. 처음 경험하는 바깥 공기와 바람, 햇빛과 중력의 기억을 잊지 못한 루카는 알베르토와 어울리다 스쿠터 여행을 꿈꾸며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
디즈니·픽사의 전작인 ‘코코’가 멕시코, ‘소울’이 뉴욕을 배경으로 했다면, ‘루카’는 한적인 이탈리아 해변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그렸다. 이번에도 공간의 감성이 영화의 색채와 분위기를 가득 채운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해변과 짙고 푸른 바다,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이 주는 평화로움은 루카와 알베르토가 어떤 모험을 해도 괜찮다는 듯 두 사람을 감싼다.
루카와 알베르토의 우정과 모험이 ‘루카’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라면, 다름과 비주류는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촉매다. 평범한 마을 소년 대신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주인공으로 삼은 설정이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 적응하는 과정은 영화가 그저 아름답고 신나는 것만 그리진 않는다는 신호다. 철저히 혼자였던 외부인 루카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인간 사회는 당연해서 잘 느끼지 못하는 편견과 불합리로 가득하다. 청춘 성장 서사를 빌려 불필요한 차별과 폭력을 하나씩 격파하는 체험은 ‘루카’가 이야기하는 본질에 가깝다. 바다에 고립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던 루카가 친구들을 만나며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어디까지 도달하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영상은 ‘루카’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사후 세계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구현했던 디즈니·픽사의 최근작과 달리, 이국적이고 낯선 풍광을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그려냈다. 루카에게 어떤 위협이 닥쳐도 크게 나쁜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 같은 묘한 안정감을 그림으로 전달하는 점이 놀랍다. 자연에 기반을 둔 동화 같은 설정과 특별한 두 사람의 보편적인 성장 서사는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한다.
이탈리아 출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막이 오르면, 감독의 이야기를 찾아 읽고 영화를 다시 곱씹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디즈니·픽사의 작품이 늘 그랬듯, 이번에도 아이와 어른들 모두 만족할 수작이다.
17일 개봉.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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