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학을 뗐다”…의료 현장선 ‘태움’ 부작용 

“갑질에 학을 뗐다”…의료 현장선 ‘태움’ 부작용 

‘직장 내 괴롭힘’ 금지로 폭언 줄었지만 대화도 단절

기사승인 2021-07-03 05:05:02
교육 기회 줄며 인력부족-이직 악순환

정부 “연내 야간간호료 등 처우개선 수가 점검”


이미지= 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의료계에 만연한 ‘갑질 문화’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규 간호사, 간호조무사는 물론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에게까지 ‘태움’이 대물림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현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갑질, 태움, 폭언‧폭행 등에 있어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지만 ‘대화 단절’로 인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계자들은 태움의 근본적 원인인 ‘인력부족’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자 생명 다루는 직업+봉건적 문화로 태움 고착화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후배나 신규 간호사가 업무 미숙 등을 이유로 선배 간호사에게 당하는 심한 질책이나 괴롭힘을 말한다. 지난 2018년 고(故) 박선욱 간호사와 2019년 고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 이후 정부와 의료계는 태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일부 성과도 확인됐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노조) 정책국장은 “2~3년 전 태움이 사회적 이슈로 조명된 이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나왔다. 그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근 노조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며 “그 결과 갑질, 태움 등의 행태가 줄었다는 비율이 높았다.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현장에서는 태움으로 취업을 포기하거나 이직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 

간호조무사 A씨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를 간호사의 아랫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폭언 등을 참다못해 퇴사를 결심했고 1년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다시 직장을 구하려고 보니 막막하다”라고 호소했다.

예비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의료계의 갑질 문화 때문에 취업이 걱정된다거나 아예 포기했다는 글도 올라와있다. 간호조무사 실습생이라고 밝힌 한 이용자는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의 갑질에 학을 떼고 취업을 포기했다. 의료계는 갑질이 일상화된 곳”이라고 밝혔다.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간호사 사이에서 태움이 심하다고 해 취업 후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간호사 이직률로 높은 수준이다. 노조가 최근 조합원으로 조직돼 있는 의료기관 102곳에 대해 2020년 간호사 이직률을 조사한 결과, 이직률이 가장 높은 곳은 최고 45.5%에 달했다. 

간호조무사계는 의료계의 봉건적 문화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이 태움 문화를 고착화시켰다는 입장이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관계자는 “태움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 특성상 병원 내에서 당연시되던 문화다. 실수에 대해 질책하는 것도 환자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병원에 따라 간호조무사끼리 태우는 경우가 있고, 간호부가 간호사와 조무사를 태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여기에는 의료계의 봉건적 문화가 뒤섞여있는 것 같다. 의사를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생기다보니 간호사, 간호조무사를 분업적 관계로 보지 않고 상하관계, 갑을관계로 보는 것”이라며 “전자(직업적 특성)의 근거가 후자(갑을문화)를 옹호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 전체를 위한 법안이 마련되면 지위 향상 및 처우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와 함께 간호조무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협회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협회는 조무사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력부족’ 해결 우선…‘교육전담간호사’ 배치 민간병원 확대 검토  

일각에서는 태움의 근본적 원인인 인력부족 문제는 그대로인 채 ‘직장 내 괴롭힘’만 강조되다 보니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인력부족 문제가 제자리걸음이라서 업무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또 그것 때문에 태움이 발생했다는 얘기가 많아서 법정인력이 준수되는 게 필요할 것”이라며 “요즘 들리는 말로는 사소한 부분들까지 신고를 해서 오히려 프리셉터(간호업무에 대해 전반적인 것들을 알려주는 일종의 멘토)로 일하는 사람들이 역태움을 당해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오 국장은 “대개 태움은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과정에서 언행 등이 과격하게 나가면서 발생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오히려 전수해줘야 할 것도 못하고 대화가 단절되면서 신규 간호사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런 상태에서 혼자 일을 해야 하는 등 업무 부담이 있다 보니 이직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간호사 인력부족과 열악한 근무조건이 간호사의 의료기관 탈출과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실제로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간호사 면허 소지자 39만 5000여명 중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19만 3900여명으로 절반도 되지 않는 49.1%에 불과하다.

오 국장은 “병원 내 신규 간호사 비율이 50% 이상이다. 중간 연차의 간호사가 없으니 예전에 비해 상호보완이 어려워졌을 거고 그래서 트레이닝 기간이 끝나면 일을 그만 두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인력이 부족해 여유가 없다보면 말도 막 나가게 된다. 간호사 이직과 태움을 막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 및 신규 간호사 등에 대한 교육제도 정착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에서는 인력만 충원되면 (태움 문제) 절반은 해결된다고 말한다. 현재는 프리셉터, 셉티들에게 각각 담당할 환자까지 주고 있는데 교육만 하게끔 하거나 담당 환자를 줄이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조직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보건복지부는 태움 및 간호 인력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전담간호사’ 배치를 민간병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전담간호사는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교육·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양정석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지난 2018년 3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한 이후 그해 12월 병원협회와 협업해 인권침해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또 복지부 소관 법은 아니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신설되며 그에 맞게 가이드라인을 수정, 배포했다”고 말했다. 

양 과장은 “교육전담간호사 사업도 계속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태움은 업무량이 많은 기존 경력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트레이닝 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국공립병원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민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인력부족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간호대 정원을 계속 늘리고 있지만 간호사 양성에만 적어도 4년 이상 소요돼 시차가 발생한다”면서도 “그 사이 이직률 개선을 위해 교육전담간호사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를 확대하는데 있어서는 다시 인력문제가 맞물린다. 그래서 간호사의 업무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8년, 2019년에는 간호인력의 처우개선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야간간호료 등 관련 수가를 개선한 바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수가가) 처우개선에 활용되고 있는지 올해 모니터링을 통해 점검해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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