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산업은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K팝 팬들의 시선은 달갑지만은 않다. 음반 구매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이 엄청나서다. CD 한 장 무게는 약 18.8g. CD 장수로만 셈해도 올해 상반기 488톤 넘는 플라스틱이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포토북, 포토카드 등 음반 패키지와 포장재 등을 감안하면 음반 구매에 따른 환경오염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전부가 아니란 점이다. K팝 팬들이 주도하는 기후 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의 이다연 활동가는 “플라스틱 문제는 기후 위기의 일부”라면서 “해외 투어 콘서트, 스트리밍 서비스 등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고 짚었다. BBC에 따르면 영국에서 열리는 음악 공연에서만 매년 40만5000톤에 달하는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가수·스태프의 지역 간 이동, 굿즈(기념상품) 제작, 무대 설치 등 콘서트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러니 팝스타들은 탄소중립적인 공연을 구상하느라 고민에 빠졌다. 영국의 세계적인 록 밴드 콜드플레이는 2019년 환경 문제를 이유로 월드투어를 중단했다. 빌리 아일리쉬, 마룬파이브, 핑크 등은 환경단체 ‘리버브’와 협업해 플라스틱 사용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그린 투어’를 시도했다. 리버브 측은 CNN과 인터뷰에서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억 파운드(약 1억3600만㎏) 이상 줄였다”며 “이는 1년 동안 자동차 2만9000대가 다니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K팝 업계에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팬덤을 중심으로 퍼졌다. 지난 3월 문을 연 케이팝포플래닛은 7월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No K-pop on a Dead Planet) 캠페인을 시작하고, SM·YG·JYP·하이브 등 주요 K팝 기획사에 기후 행동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기획사와 가수에게 ▲음반 및 굿즈 생산 시 플라스틱 사용 최소화 ▲탄소배출이 적은 방식으로 공연 기획 ▲아티스트와 기후위기를 적극 알리고 행동 ▲환경 메시지 담은 K팝 노래하기 등을 제안했다.
그룹 블랙핑크가 최근 친환경 TPU(고무용 탄성을 지닌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해 굿즈를 제작하고, 청하가 지난 2월 플라스틱과 코팅을 최소화한 음반 패키지를 선보이는 등 환경 친화적 마케팅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갈 길은 멀다. 포토카드나 팬사인회 응모권 등 구성품으로 음반 복수 구매를 유도하는 기획사의 판매 전략, 음반 판매량이나 음원·뮤직비디오 스트리밍으로 가수의 위상을 증명하려는 팬덤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친환경 K팝’은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다연 활동가는 “기후 위기가 가속화한다면 우리는 K팝을 즐기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면서 “K팝 팬덤과 아티스트들이 힘을 합치면 기후 운동에서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안전한 지구에서 K팝을 즐기려면 지금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픽사베이, 현대카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