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꽉 찬 두 시간이었다. 7일 부산국제영화제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날’이었다. 관객들은 오전 9시부터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을 만났다. 감독과 관객의 대화에 이어 오후 5시엔 봉준호 감독이 나섰다. 한국을 대표하는 봉 감독과 일본을 대표하는 하마구치 감독의 대담은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시작 전부터 행사가 길어질 것이라 예고한 봉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 영화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대화 도중 더워져는지 겉옷을 벗고 부채를 부치며 하마구치 감독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제가 미친듯이 계속 질문할 것”
마이크를 잡은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단단한 각오를 선언처럼 쏟아냈다. 하마구치 감독의 오랜 팬을 자처한 봉 감독은 “동료 감독으로서 그의 직업적 비밀을 캐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질문을 계속 할 테니까 양해해달라. 관객들이 질문할 시간이 있을지 보장 못하겠다”고 이번 대화에 임하는 마음을 밝혔다.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듣던 하마구치 감독도 웃음이 터졌다. 대화를 모두 마친 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편하게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지금 봉준호 감독의 연출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봉 감독님이 저를 커다랗게 긍정해주면서 ‘넌 아직 더 할 수 있어’라는 느낌으로 뭔가 끌어내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감독님 밑에서 연기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고 말하자 듣던 봉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 “자동차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찍은 거야”
봉준호 감독의 첫 질문은 자동차 장면에 대한 물음이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비롯해 ‘아사코’, ‘우연과 상상’ 등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엔 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대사를 쓰는 작업에서밖에 시작할 수 없다는 게 약점”이라며 “움직임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답했다. 이에 봉 감독은 평소 자녀들과 대화를 잘 안 하지만 차에 앉으면 말을 잘하셨던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마구치 감독은 “차로 이동하는다는 건 지점 A에서 B로 옮겨가는 동안 시간이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말랑말랑한 특이한 시간”이라며 “언젠가 곧 끝날 특별한 시간에 말하고 싶은 심리”라고 설명했다.
△ “전 연기 잘하는 배우 모셔오려고 애를 써요”
배우 연기에 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은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에 등장한 인상적인 장면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며 연기 연출의 비법을 물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세밀한 디렉팅은 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으로 대본 리딩을 반복해서 많이 한다”고 답했다. 배우 캐스팅과 오디션 이야기도 나왔다. 하마구치 감독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속마음을 보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며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보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연기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이어 “감독들이 디렉팅이라는 명분으로 말도 안되는 이상한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금은 어떻게 배우를 최대한 편하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 “서울에서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에서 남진·나훈아 노래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자동차는 빨간색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엔 노란색 차가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바뀐 이유에 대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답변은 간단했다. 영화에 차량을 제공해주는 스태프가 몰고 온 차가 빨간색이었던 것. 하마구치 감독은 “이걸로 하라는 뜻”이라 생각해 즉석에서 그 차로 결정했다. 봉 감독은 “스태프가 영화에 큰 흔적을 남긴 것”이라며 ‘기생충’에 OST로 등장한 이탈리아의 대중가요 칸초네(Canzone) 이야기를 꺼냈다. 소품팀에서 준비한 30여개의 LP 중에서 골라볼까 생각이 들었고, 그 중 아버지가 들으신 것 같은 귀에 익은 곡이 선택했다. 그 곡을 부른 가수가 워낙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가수라 이탈리아에서 개봉했을 때 관객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 그 가수를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이야기도 들려줬다. 봉 감독은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남기는 흔적은 영화라는 공동 작업을 하는 재미”라고 설명했다.
△ “난 불안감이 많은 사람”
마지막 질문은 관객의 몫이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대사 쓰는 작업에서 시작하는 걸 약점이라고 말한 걸 언급하며 봉준호 감독의 약점을 물었다. 봉 감독은 “내겐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불안감의 표현”이라며 “매순간 불안하기 떄문에 어디로 어떻게 달아날 것인지 회피하는 생각을 많이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불안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 감독은 확신의 감독”이라며 “영화를 만드는 방법론이나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이 철학과 확신으로 가득찬 바위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마구치 감독 역시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촬영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배우들과 리허설을 반복하는 것 모두 불안을 지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봉 감독은 이를 듣자마자 “거짓말”이라고 받아쳤고, 하마구치 감독은 “정말이다”라고 주장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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