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가해자가 감형을 목적으로 여성단체에 기부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가해자의 일방적 기부를 감형 요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5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8일 후원 계좌에 1000만원이 입금됐다”며 “감사한 일이지만 먼저 후원 목적을 확인한 뒤 기부금을 반환했다”고 알렸다. 이 단체는 “갑작스러운 고액 후원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폭력 가해자가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기부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26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후원자의 개인적인 사안을 알 수는 없지만 1000만원의 후원금을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절차에서 정확히 감형 목적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기부금이 들어오면 후원자와 직접 연락해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관계자는 “단체에 감형 목적으로 기부금이 들어온 건수는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경험적으로나 매뉴얼 등을 통해 관련 사례를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여성단체 기부가 양형 감경요소로 반영되지 않도록 대법원에 촉구하는 서명 운동도 벌이고 있다.
성범죄 가해자는 여성단체 후원을 통해 형량을 감경받을 수 있다. 일부 법관이 성범죄 피고인의 사회단체 기부⋅후원 영수증을 양형기준상 감경요인인 ‘진지한 반성’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들이 모여 성범죄 관련 지식을 나누고 감형 노하우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에서는 ‘기부⋅후원이 얼마 동안 지속해야 감형에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게시물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협의회)에 따르면 2015~2017년 가해자 측으로부터 후원·기부 제안을 받았거나 기부금 납부가 확인된 사례는 총 101건이다. 텔레그램에 아동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지난해 ‘n번방 사건’에서도 n번방 회원들이 감형을 목적으로 여성단체에 기부한 사례가 잇따랐다. 여성단체들은 이를 막기 위해 후원 계좌를 비공개하거나 후원자에게 전화해 기부 목적을 확인한 뒤 환불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유의미한 감형을 받지 못했다며 성범죄자가 여성단체에 기부금 환불을 요구한 경우도 있다. 2017년 2월 성폭행 범죄자가 1심 판결 전에 한국여성민우회에 900만원을 기부한 이후 형량이 줄지 않아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가해자의 일방적인 여성 단체 후원이 감형 요소로 쓰이는 판례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017년 9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전국 126개 상담소가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행정처에 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은 감경 요인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대법원 소속 양형위원회는 “여성단체 기부 사실을 피의자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삼을지에 대해 앞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큰 변화는 없었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여전히 후원⋅기부 영수증이 진지한 반성의 사유로 이용될 것이라는 기대나 언급되는 판례들이 있다 보니 가해자의 변호사 등이 기부를 하나의 방법으로 알려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가 여성단체 후원을 감형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 악용되는 실태를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정윤영 인턴기자 yunie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