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홍모(16)군은 좀처럼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게임은 마냥 좋다. 요즘엔 1주일에 2번씩, 방과 후 e스포츠 학원을 찾고 있다. 동료 수강생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고 강사진에게 조언을 받는다. 더디지만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다. 홍군의 꿈은 프로게이머. 언젠가 대회에서 팬들의 환호성을 받는 모습을 매일 그린다.
홍군은 “재미가 있다 보니 점점 더 게임이 좋아졌다. 내 실력으로 게임을 승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즐겁다. 이런 경험들을 앞으로 더욱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서 프로게이머를 꿈꾸게 됐다”고 전했다.
프로게이머는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 직업으로 통한다. 과거 기피 직업이었지만 e스포츠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인식이 변했다. 구체적으로 액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인기 종목인 LoL은 국내 리그 기준으로 정상급 선수의 연봉이 평균 10억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최고 ‘페이커’ 이상혁(26)은 50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여년 전 업계 최고 대우는 1억 원 수준이었다.
교육부의 ‘학생 희망 직업’ 조사에 따르면 프로게이머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09년 15위, 2015년 11위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희망 직업 5위에 올랐다. 이 가운데서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거나, 부모의 반대를 극복한 소수의 학생만이 프로게이머에 도전한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이유는 게임에 대한 애정, 선수들을 향한 동경, 많은 연봉 등 제각각이다. 최근 한국 이스포츠 아카데미에서 프로게이머 도전을 시작한 박모(16‧서울)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대회를 봤는데,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기뻐하는 모습, 서로에게 게임 내용을 브리핑하는 모습이 멋졌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3학년김모(19‧서울)군은 “재미있는 걸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 선택했다”고 전했다.
프로로 데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특출 난 실력으로 게임단 관계자에게 스카우트 되거나, 게임단이 운영하는 아카데미(학원) 등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학원을 찾는 학생들의 수도 해를 거듭하며 증가 중이다.
LoL e스포츠 게임단 농심 레드포스 산하 한국 이스포츠 아카데미의 원완희 원장은 “지금은 코로나로 주춤하지만 18년도 11월 5명에서, 2019년 12월엔 원생이 100명을 넘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엔 달라진 학부모들의 태도도 한몫했다. 과거보다 게임 친화적인 성향이 강한 이들은 e스포츠 산업이 품은 잠재력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게임을 즐긴다고 답한 학부모는 57.5%로 2017년(43.9%)부터 5년간 꾸준히 상승 중이다. 한국e스포츠협회,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e스포츠 직업 설명회 등엔 자녀 걱정이 가득한 학부모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아들을 한국 이스포츠 아카데미에 보낸 이윤희씨는 “처음 프로게이머 얘길 꺼냈을 땐 ‘대학은 어떡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요즘 유망한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지만 직업 수명이 짧다고 들어 걱정이 많았다. 지금도 학업이 걸리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들이 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길 했고,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실력이 늘고 있다고 해서 계속 응원해주기로 결심했다”며 “지금은 나도 다양한 e스포츠 분야로 생각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를 희망하는 16세 자녀를 둔 김미성씨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지금은 끝까지 그 길로 가길 바라고 있다”며 “아이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프로게이머가 아니더라도 관련 진로도 다양하단 걸 알게 돼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라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 전 프로게이머 출신이자, e스포츠 시장의 개국공신인 박정석 프레딧 브리온 단장은 “내가 프로게이머를 할 땐 부모님의 반대와 기성세대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괴로웠다”며 “당시 게임 중독 및 예방에 대한 토론회도 많아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떳떳하게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최근에는 부모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하는 자녀를 위해 직접 서포트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며 “과거에 비해 선수들의 연봉이 높아지기도 했고 여러 선수 및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감회가 새롭다”고 기뻐했다.
박 단장은 향후 e스포츠 산업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예전엔 e스포츠 시장의 중심이 국내였고, 국내 리그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e스포츠 종목이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다”며 “개인방송, 유튜버, 코치, 해설자, 강사, 전력분석관 등 다양한 관련 직업도 생겨 은퇴 뒤의 삶도 보장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열린다. 장기적으로는 올림픽 정식종목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유망 직업으로 떠오른 만큼,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콘진원 조사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조사에 응답한 6개 아카데미에서 수료를 마친 인원은 총 494명이다. 이 가운데 28명이 데뷔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료 인원과 데뷔 비율을 살펴보면 5.7%다.
일례로 한국 이스포츠 아카데미의 경우 실력에 따라 기초반과 심화반에서 수업을 시작해, 아카데미 내에서 각 라인(포지션)별 1등을 한 학생들만 팀 게임 집중반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각종 아마추어 대회와 연습 게임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학생이 연습생 테스트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 모든 과정이 짧게는 5개월, 길게는 1년 9개월 정도 소요된다. 많은 노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길이다.
원 원장은 프로게이머에 도전하기에 앞서 깊은 고민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학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우리 아이가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까’, ‘학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현실적인 문제”라면서 “그럴 때마다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현실적인 얘기들을 많이 하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원 원장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겉으로 보기엔 정말 멋있어 보이지만 무수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내가 단순히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서, 혹은 게임을 지금 친구들보다 잘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지금 당장 실력이 없다고 해서 될 수 없는 직업도 아니다. 기초반에서 시작해 연습생, 2군으로 입단한 학생도 적지 않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할 자신이 있다면 도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치권은 e스포츠 학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만큼, 제도적인 보완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은 “e스포츠 학원이 들어선 시간이 짧다 보니, 좋은 커리큘럼이나 양질의 강사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들이 더러 있는 걸로 안다”며 “일반 학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검증할 수 있지만 e스포츠 학원은 상대적으로 접근하기도 어렵고 정보가 적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최소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