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세컨드’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영화 [쿡리뷰]

‘원 세컨드’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영화 [쿡리뷰]

기사승인 2022-01-26 06:46:02
영화 ‘원 세컨드’ 포스터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것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당황하지 말자. 그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언제나처럼 낯선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저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전부다.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새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이게 영화다.

‘원 세컨드’(감독 장이머우)는 단 1초에 모든 것을 건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모든 것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던 문화대혁명 시기, 장주성(장이)은 다음날 상영되는 영화를 보려고 외딴 마을을 찾는다. 상영 전날 밤 우연히 류가녀(류하오춘)가 영화 필름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신의 영화처럼 장주성은 사막을 가로지르며 류가녀를 쫓는다. 추격 끝에 결국 필름을 찾았지만, 배달 실수로 필름 한 통이 망가져 영화 상영이 취소될 위기에 처한다. 상영을 담당하는 판영화(판웨이)는 필름을 되살리기로 결심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은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쉬운 영화다. 화려한 촬영, 편집 기법 같은 잔재주가 없는 영화다. 앵글은 대부분 고정되어 안정감을 주고, 이야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그렇다고 가벼운 영화는 아니다. 별다른 움직임 없이도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인물들의 갈등이나 상황들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렸다. 단순한 이야기는 의외로 흥미진진하고 수많은 함의를 담아낸다. 수십 년 전 이야기를 수십 년 전 고전영화 제작 방식으로 만든 영화다. 그럼에도 오래된 느낌 없이 관객을 홀린다.

영화 ‘원 세컨드’ 스틸컷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등장인물이 생각하는 영화의 의미가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봐야 하는 것이고, 누군가에겐 1년 동안 기다려온 이벤트다. 또 누군가에겐 영화보다 영화 필름이 꼭 필요하고, 누군가에겐 수십 년 동안 시간을 들인 자부심의 결정체다. 같은 영화를 봐도 모두 다른 영화를 만나는 영화의 속성을 하나의 우화처럼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진짜 영화, 나의 영화가 무엇인지 끄집어낸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필름을 되살리기 위해 아무 말 없이 갖은 정성을 다하는 장면은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처럼 그려졌다. 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겐 영화란 대체 무엇일까 질문하게 한다.

언뜻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연을 갖고 있다. 각자 다른 사연은 서로를 돕게 하고, 부딪히게 한다. 또 삶이 영화보다 먼저인 순간도, 영화가 삶보다 앞서는 순간도 존재한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이야기 중심에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원 세컨드’를 보는 관객들도 각자 다른 사연을 떠올리게 유도한다. 제목처럼 아주 짧은 순간도 영원히 기억될 수 있고, 영원히 기억될 것 같았던 순간도 완전히 잊을 수 있다. 마치 1초의 필름을 반복하는 장주성처럼, 영원히 사라져 찾을 수 없게 된 무언가처럼.

영화 ‘붉은 수수밭’, ‘귀주 이야기’, ‘인생’ 등으로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휩쓴 장이머우 감독의 초기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201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출품이 취소됐다. 이를 두고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중국 정부 개입을 의심하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 베테랑 배우 장이는 장주성을 연기하기 위해 10㎏을 감량하고 피부를 검게 태웠다. 3000:1의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서 합격한 류하오춘은 ‘원 세컨드’로 제15회 아시아필름어워즈 신인상을 수상했다.

오는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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