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이렇게 청소년참정권에 관심이 많았었나?” 라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여기저기서 만 18세 선대위원장을 인선했다고 밝히고, 국회는 만 18세 피선거권에 이어 조건부 만 16세 정당 가입까지 매우 신속하게 통과시켰습니다. 몇십 년을 진짜 끈질기게 싸워 얻어낸 결과를 통해, 순식간에 청소년들이 선거의 이슈로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서는 만 18세 선대위원장의 발언을 가지고 논설을 벌이고, 주변에서는 이번에 선대위원장으로, 선본 책임자로, 혹은 출마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성과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진전이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으나, 우리는 좀 더 깊고 어두운 사실에 직면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아까 정당 가입에서 ‘조건부’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끼실 분들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는 ‘아니 정당에 입당했으면 하는 거지, 무슨 조건이 있어야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이번에 통과된 법상으로 만 16세에서 18세의 청소년들은 정당 가입을 할 때 ‘법정대리인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 친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정당 가입에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으라는 말은 청소년들에게 두 가지를 시사합니다. 첫 번째는 ‘너는 이제 부모님이랑 성향 다르면 정당 가입 못 한다?’입니다. 말 그대로 집안에서 정치적 성향 차이가 극심한 친권자와 자녀 사이에서 도대체 동의가 어떻게 나오냐는 겁니다. 결국, 부모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말인데,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성향 다르면 정당 가입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이는 단순히 진보진영에만 적용되는 일이 아닙니다, 보수 성향의 자녀가 진보 성향의 친권자에게 입당 동의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고, 이는 보수 성향 청소년들의 정당 정치 침체를 낳겠지요. 이 조항은 청소년조직을 준비하는 모든 진영에게 타격으로 다가올 겁니다. 지금 이 조항을 폐지하지 않으면 친권자의 동의를 못 받은 청소년에게 남은 방법은 법정대리인 동의를 ‘만들어오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러 진보정당은 정당법 위반을 무릅쓰고 청소년 당원들을 받는 실정인데, 이제는 동의까지 얻어야 하니 이미 청소년당원들이 있는 정당에서도 앞으로의 청소년 활동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두 번째는 ‘이제 부모님 동의만 있으면 강제적 입당도 손쉽겠네?’ 입니다. 지금도 가끔 “나는 입당하지도 않았는데 왜 입당 축하 연락이 오는 거야?”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만 18~19세 이상 비 청소년만 정당 가입을 할 수 있었던 때조차 이런 글이 나오는데, 이제는 비 청소년이 강제로, 혹은 몰래 입당을 시킬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셈입니다.
단순한 우려처럼 보이겠지만 가정에서 친권자는 청소년의 주거권, 경제권 전반을 통제하는 입장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청소년이 친권자의 압박에 못 이겨 강제로 입당하는 경우나, 친권자가 자신을 몰래 입당시킨 것에 대한 항의를 못 할 수도 있음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만약 이런 형식으로 법이 집행된다면, 당내 경선이나 중요한 때 청소년을 강제로 입당 시켜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우려가 자연스럽게 나오겠지요. 이는 중대한 청소년혐오임과 더불어 정당정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통제당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직접 정치는 또, 또 나중으로 밀려났고 이번에는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후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결과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청소년참정권이 확대되었습니다!’ 하며 공적 세우기에 열을 올리셨죠. 청년, 대학생, 청소년들이 청년 행동의 이름으로 토론 좀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도 피하셨으니 이젠 별로 기대조차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참사를 만든 거대양당은 지금 공적 자랑할 때가 아니라, 무한한 책임을 지고 청소년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당 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으로 발의해서 재논의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청소년에게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는 독소조항을 통과시키기만 하면 우리가 알아서 납득할 것이라는 그 발상은 정말 오만함의 극치입니다.
대선후보들도 이에 대해 정책과 약속으로서 책임을 분명히 져야만 합니다. 청소년들은 지난해 11월 14일 분노의 깃발 행동을 통해 △정당 가입-선거운동 연령 폐지 △선거권-피선거권 만 16세로 인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비민주적 학칙의 폐지를 약속하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요구를 그대로 공약에 담아 다음 정권에서 그대로 실현해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최소한 당선되고 나서 바로 ‘정당 가입 독소조항’ 폐지하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본인들의 만 18세 선대위원장 인선 행보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면 지금 여기서 당장 증명해 보이셔야 할 것입니다.
기성 정치권 모두, 대통령도 끌어내린 우리의 정치적 역량을 얕잡아보시는 것은 이제 그쯤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더 얌전히,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선후보들과 기성 정치권이 손 놓고 구경만 하겠다면 우리 청소년은 기성 정치권들이 구경만 하고 볼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해 행동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