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장관 인선에 게이머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관 후보자 가운데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제한 인사가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0일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게임산업과 연관성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인선도 포함됐다.
게임산업 주무 부처인 문체부 장관에는 윤 당선인의 특별 고문을 맡고 있는 박보균 전 중앙일보 편집인이 지명됐다. 박 후보자는 1981년부터 40년 가까이 언론인의 길을 걸었으며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편집인을 거쳐 중앙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이후에도 중앙일보 대기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윤 당선인은 인선 발표 자리에서 “(후보자는) 4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았다”면서 “특히 미국 워싱턴 DC에 있던 19세기말 대한제국 공사관의 문화적 가치와 외교 역사적 의미를 발굴해 재조명하고 공사관이 국가에 품으로 돌아오는 데 기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박 후보자는 ‘현장주의자’ 면모로 지역별 문화 자치, 세계문화를 지속해 선도하는 K-컬쳐 지원방안, 문화예술인 권익과 자율보장 등 윤 당선인 공약을 살아 숨 쉬는 현장 속에서 실천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박 후보자와 게임산업의 접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장관 후보자가 40년 넘게 언론인으로 살아왔고, 특히 기자 생활의 전부를 정치부에서 일했다고 들었다”면서 “하루가 멀다고 시시각각 바뀌는 게임산업 트렌드를 잘 선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여가부 장관 인선이다. 여가부는 꾸준히 게임 규제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게임업계 대표 악법이라고 불리는 ‘게임 셧다운제(오후 10시 이후 청소년들의 심야 게임을 금지하는 제도)’도 여가부의 대표 정책 중 하나다. 여가부 장관에는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을 지낸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명됐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후보자는 원내부대표와 여성가족위원회 간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김 후보자는 국회의원 시절 게임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며 게임탄압 행보를 보였다. 김 후보자는 2013년 11월 여가위 국정감사에서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존속살인, 자살, 폭행, 방화 등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중독으로 인한 사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중독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게임의 어두운 부분은 게임업계에서 책임을 지고 중독을 예방하거나, 이를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게임업체 매출 0.1%의 게임문화재단의 기금 규모는 너무 적은 수준이니 이를 확충할 필요성이 있다”며 게임중독치료기금을 징수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 후보자는 라이엇게임즈에 기부를 강요하며 압박을 넣기도 했다. 그는 2013년 “국내에서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LoL)’ 이용률이 가장 많이 높음에도 라이엇게임즈는 게임문화재단에 기금을 전혀 안 내고 있다”면서 “외국계 회사지만 국내 게임문화산업을 위해서 일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라이엇은 이제 내년부터 상당수의 기부금을 낼 예정이라고 알고 있어도 되냐?”며 되묻기도 했다.
김 후보자의 내정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서는 우려와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19대 국회는 한국게임의 암흑기였다”면서 “게임산업 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 새정부의 첫 국무위원으로 돌아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러다 게임중독 법안을 발의했던 손인춘·신의진 전 의원도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든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친 게이머 행보를 이어온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남겼다. 전 의원은 ‘스멀스멀 흘러오는 게임 악마화-게임중독세 부활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김현숙 내정자는 과도한 게임이용 토론회, 인터넷 게임중독 토론회 등 당시 국회에 열리던 게임중독 토론회란 토론회는 모조리 다니던 이력의 보유자인 분이 여가부 장관 후보자”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정부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했는데, 이 시점에 게임이 악의 근원인 것처럼 말하고, 게임중독세 도입을 강력히 외치던 분을 여가부 장관에 앉힌다는 건 셧다운제 같은 비정상적 정책과 게임중독세 문제를 재점화 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선거 때와 같은 입장을 이어갈 것이라면, 김현숙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통해 그 의지를 국민들께 보여주라”고 촉구했다.
21대 대선에서 게임은 주요 키워드 중 하나였다. 윤 당선인은 유세 당시 주요 게임 공약으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 완전 공개와 국민의 직접 감시 강화 △게임 소액 사기 전담 수사기구 설치 △e스포츠도 프로야구처럼 지역연고제 도입 △장애인 게임 접근성 불편 해소 등을 내세우며 2030 게이머들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