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방역 첫 관문 ‘공항’, 감염병 감시체계 촘촘해졌을까 ②집단감염, 다음엔 막을 수 있을까 ③디지털+대면’ 영업 빛나지만…그림자는 깊다 ④코로나19 끝나니 인플레 위기 |
# 결혼을 앞둔 이 모(27)씨는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 예비부부의 직장과 가까운 곳은 서울 은평구 수색동이다. 22평형 기준 9억원. 모은 돈을 털어 3억원을 마련했다. 나머지 6억원은 주택담보대출로 채워야 한다. 원금과 이자로 내야 할 돈은 한 달에 350만원. 무려 30년을 부어야 한다. 최근 급등하고 있는 금리 때문에 이자 부담이 커진 이 모 씨는 월세로 신혼집을 알아보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체계를 완화하면서 엔데믹 상황에 돌입했다. 경제가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과 사상 최대의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쿠키뉴스는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인플레이션 속의 경제 상황과 위험(리스크) 등을 짚어봤다. 인터뷰에는 삼성증권 유승민 글로벌투자전략팀장,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글로벌자산배분팀 이사,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투자전략팀 이사가 참여했다.
글로벌 긴축정책…한국에 어떤 영향 줄까
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의 금리 인상 여파로 인해 국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보다 커지고 있다. 현재 코스피 지수는 1년 7개월 만에 2300대까지 밀려났고, 원·달러 환율도 13년 만에 장중 1300원을 돌파했다.
금융시장이 패닉상황으로 이어진 것은 고공행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여파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자 연준은 최근 정책금리를 0.75%p 높이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매파로 변한 연준의 행보와 위험자산을 회피하려는 심리까지 겹쳐 ‘패닉셀’로 이어지고 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으로 기대보다 중앙은행의 긴축 강도가 쎄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과 중국 봉쇄 등 예상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슈가 맞물리면서 금융시장을 압박하는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글로벌자산배분팀 이사는 “가파른 긴축이 예고되면서 대출을 일으키기 위해 했던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고 있다”며 “긴축의 핵심 배경인 고인플레이션이 실질 구매력을 약화하면서 전 세계 소비 모멘텀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연계성을 고려할 때, 선진국(미국)의 긴축정책 시행에 한국이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시장에서 긴축 영향이 실물의 침체를 초래할 경우, 향후 한국의 수출둔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흔들린 자산시장 부동산마저 휘청이나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자산시장(주식⋅부동산⋅가상자산)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가상자산을 꼽았다. 유동성 효과가 떨어졌을뿐더러 테라-루나 사태로 신뢰감마저 잃었다는 평이다.
박희찬 이사는 “가상자산은 소득이 발생하지 않아 오직 유동성만으로 가격을 뒷받침해 왔다. 기존에 고평가 논란이 많았는데 유동성 효과가 떨어지면서 가격 하락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안전자산인 부동산에 대한 불안 요소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팀장은 “부동산은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자산인데 가계의 부동산 관련 부채 비율이 높은 점은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병현 이사는 “차후 연준을 중심으로 한 고강도 긴축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 중에 부동산과 주식시장 양쪽 모두 변동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박희찬 이사는 “내년 상반기에는 글로벌 경기선행지수가 저점일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이에 따라 주가는 회복세로 반전할 수 있지만 집값은 상대적으로 회복 전환이 늦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택 거래는 급매 증가 등으로 내년 상반기부터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못 잡나…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증시는 추락하는데 환율까지 오르면서 시장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진정되지 못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발 에너지 가격 불안은 이 같은 우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진우 팀장은 “현 상태에서 경기는 2%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희찬 이사는 “한국은 마이너스 성장까지는 안 갈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도 “예년에 보기 어려웠던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부진이 겹친 것 맞다. 현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준한다”고 판단했다.
인플레이션 흐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소 엇갈린다. 인플레이션 강세가 내년까지 이어지진 않겠지만 지정학 리스크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박희찬 이사는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해서 내림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2%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유승민 팀장은 “수요자 측 인플레는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으로 내년에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공급자 측 인플레는 지정학적 위험이 관건이다. 내년에도 지정학 위험이 해소되지 못한다면 공급이 주도하는 인플레 압력 지속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취약계층 핀셋 지원 이뤄져야…재정적 지원 확대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을 축소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저소득자, 저신용자, 소규모 자영업자 등 한계층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승민 팀장은 “에너지 수급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저소득자, 저신용자, 소규모 자영업자 등 한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용 상승분이 소비자 물가에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희찬 이사는 “유류세 인하처럼 재정적 지원 확대를 통해 비용 상승분이 소비자 물가에 전가되지 않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조처를 해야 한다”면서 “공급망 애로가 큰 부문에 대해서도 병목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도한 가격 개입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진우 팀장은 “과도한 가격 개입은 수요와 공급에 왜곡을 가져올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면서 “정부 정책 변화의 방향은 생산성 개선에 일조하는 방향으로 중장기 체질 개선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