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머루와인 정말 맛있어요! 기자님도 꼭 한 번 드셔보세요”
쏟아지는 폭우도 술을 향한 소비자들의 갈증을 막진 못했다. 30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는 행사 첫 날 평일 오전부터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하루 종일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행사장 방문객들은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저마다의 잔을 들고 다니며 시음하기에 바빴다.
입구부터 술 내음이 폴폴 났다. 폭우로 인해 축축하게 가라앉은 공기는 술을 즐기기 딱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날 박람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2030세대’들과 ‘전통주’였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카테고리는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주류문화가 시작됐음을 넌지시 암시했다.
현장의 2030세대들은 각자의 잔을 들고 다니며 와인, 위스키, 맥주, 전통주 시음을 즐겼다. 이들은 사용한 잔을 행사장 내 곳곳에 마련된 세척존에서 몇 차례씩이나 헹구어내면서 음주 문화를 즐겼다. 캐리어 또는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친구들과 행사장을 방문한 대학생 김모씨(21)는 불그스름한 얼굴을 한 채 “다 같이 술 한 번 마셔보려고 이 폭우를 뚫고 왔다. 대학 입학 후에 술자리를 가질 일이 많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양한 술들을 마셔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 이모씨(21)는 직접 구매한 머루와인을 흔들어 보이며 “제 친구들만 하더라도 식당에서 파는 평범한 맥주와 소주보다는 새로운 술에 관심이 많다. 이 머루와인 참 맛있다. 일반 와인은 저희 같은 와인 초짜가 먹기에 산도가 강한데 이 와인은 적당한 산도를 가져서 정말 좋다”고 기자에게 구매를 권하기도 했다.
대학생 친구들의 30년 뒤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50대 일행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미 거하게 한 잔 하신 듯한 모습의 박모씨(50) 일행은 “친구들과 매년 주류박람회에 방문한다. 올해는 유독 젊은 친구들이 많아졌고 전통주 관련 부스가 엄청 늘었다”며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금 사려고 몇 개 부스를 점 찍어뒀다. 미리 사면 무거우니까 마저 다 돌아보고 한 번에 구매해서 갈 것이다”라며 다음 부스로 ‘도장 깨기’를 하러 나섰다.
행사장 중앙에 자리한 ‘영동와인’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충북 영동군에 와인양조장을 둔 43여개의 브랜드들이 영동와인이라는 이름하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레드·화이트·로제·스파클링·브랜디 등 다양한 영동와인들이 저마다의 영롱한 색감을 뽐냈다. 영동와인 측은 쿠폰을 나눠주며 행사장 곳곳에 숨어있는 영동와인 방문 도장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동와인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도 외국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와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며 “한식과 가장 잘 맞는 것은 아무렴 한국 와인”이라며 영동와인의 품질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행사장에는 전통주가 정말 많았다. 한국에 이렇게나 많은 전통주가 존재했던가 싶다. 참여업체들은 특히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홍보에 적극 나섰다. 증류주 브랜드 ‘화요’는 집에서도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키트 상품을 판매하기도 하였으며, 매년 추석 때에만 직영점을 통해 판매해오던 막걸리의 상시 판매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또한 부스 한켠에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인 포토매틱 머신을 가져다놓기도 했다. 현장의 젊은 방문객들은 친구 또는 연인과 술잔을 든 채 소중한 추억을 네 컷 사진으로 남겼다.
전통주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들도 인기였다.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 ‘술담화’는 술 구독 서비스 스타트업이다. ‘당신의 인생 술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컨셉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두세 병의 전통주를 발굴해 소비자 집으로 배송해준다.
술담화 관계자는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통주하면 구매하기도 어렵고 제품설명을 찾아봐도 양조장 역사가 나와 있는 등 진입장벽이 높았다”며 “다행히 온라인상에 전통주 판매가 풀리고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최근에는 많은 분들이 구독서비스를 이용하신다”라고 말했다.
나루생막걸리, 표문막걸리 등으로 유명한 ‘한강주조’는 부스 내 에코백, 셔츠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한강주조 관계자는 “저희의 타겟층은 막걸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많은 분들이 전통주를 거부감 없이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며 “성수에 양조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 이미 입점해 있다. 한 번 구매하셔서 맛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류 관련 강연과 행사의 열기는 취기를 더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진행된 ‘국내 와인시장 분석 및 앞으로의 전망’ 세미나에는 많은 바이어들이 참여해 학습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또 칵테일 챔피언십 대회에는 전문가 또는 일반인 참여자가 무대 앞에서 직접 본인만의 칵테일을 주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사위원과 방문객, 참가자들의 지인들은 멋진 ‘주조 쇼’에 열띤 환호를 보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위스키 바를 운영 중이라는 젊은 사장님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오르면 주종이 와인과 위스키로 간다’는 말이 있다. 위스키, 와인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은 매년 커지고 있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전통주에 관심이 생겼다. 전통주를 위스키와 어떻게 연결시킬지 고민 중”이라며 “‘김창수 위스키’의 경우 세계 위스키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앞으로 한국 주류업계는 한국만의 술 또는 술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 고민을 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는 한국국제전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주류수입협회와 한국베버리지마스터협회 등이 후원한다. 올해 행사는 약 300곳의 주류·식품 관련 기업 또는 단체가 홍보부스로 참여했다. 입국 제한 및 격리가 해제되면서 해외업체의 참가도 많았다. 조지아, 프랑스, 리투아니아 등 8개국에서 20여개의 부스를 차렸다.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한 관람객(일반인·바이어 등) 사전 등록으로만 3만명 이상이 몰렸다. 이날 입장권 현장 구매 줄과 입장 줄 또한 길게 늘어졌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