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엔 없고, ‘최강야구’엔 있는 순간들 [최강야구③]

야구엔 없고, ‘최강야구’엔 있는 순간들 [최강야구③]

기사승인 2022-07-04 13:00:02
JTBC ‘최강야구’ 포스터

“여기서 홈런 칠 선수가 나올까요? 여기서 도루할 선수? 없습니다.”

이승엽 감독이 JTBC ‘최강야구’에서 자신이 맡게 될 최강 몬스터즈 라인업을 처음 보고 한 말이다. 박용택은 올해 44세인 나이가, 정근우는 은퇴 이후 잦은 방송 출연이 불안 요소였다.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달랐다. 고교팀과 대결에서 박용택은 홈런을 쳤고, 정근우는 도루에 성공했다. 은퇴한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선수들이 온 몸을 던지는 플레이에 시청자들도 화답했다. 실제 프로야구 중계를 보는 것 같은 촬영과 편집도 화제를 모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카메라와 마이크는 더 깊숙이 들어갔다.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나누는 대화와 감독의 작전 지시, 해설진이 나누는 사담 등 경기 중계에서 볼 수 없던 장면들을 방송에서 어떻게 풀어냈는지 정리했다.

JTBC ‘최강야구’ 캡처

선수를 보는 시선의 반전

최강 몬스터즈 투수 심수창은 첫 경기인 덕수고와 1차전에서 선발에 올랐다. 은퇴한 지 3년 만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통산 100승을 기록한 투수들을 제치고, 심수창이 팀 1선발 투수라는 사실은 모두가 즐겨하는 농담거리였다. 하지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속 130㎞대의 직구 속도는 점점 올랐고, 주무기인 스플릿은 타자들을 무력화시켰다. 삼진도 여럿 잡았다.

경기 시작 전 심수창의 선발 소식을 듣고 “굉장히 충격이었다”고 했던 해설진은 1회초 덕수고 타선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고 “너무 잘한다”, “이 정도로 준비해왔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감탄했다. 2회도 삼진을 곁들여 세 명의 타자를 무사히 처리한 이후 쉬는 시간에 정용검 캐스터가 “진짜 반성한다. 시간 좀 지났다고 프로야구 선수를 너무 낮게 봤어”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최강 몬스터즈 덕아웃 분위기도 밝았다. 투구수까지 관리하는 안정적인 모습에 동료들은 “현역 때도 이렇게 안 던졌는데”, “현역이야 현역”, “완투하고 2주 쉬어” 등 농담 섞인 덕담을 건넸다.

→ 스포츠 경기 중계에선 선수 실력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비난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수창 선발에 장시원 PD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해설진이 언급할 정도로 ‘최강야구’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동시에 선수가 열심히 몸을 만들어 훌륭한 경기를 펼쳤을 때 느껴지는 감동 또한 더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경기에 오르는 선수가 직접 느끼는 부담감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했을 때 어떤 응원을 받는지 담아내 진짜 이야기로 만들었다.

JTBC ‘최강야구’ 캡처

분위기를 바꾼 감독의 한 마디

최강 몬스터즈 박용택은 사전 인터뷰에서 6할 타율을 기록할 거란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첫 경기인 덕수고와 1차전 1회말 첫 타석에서 투수 앞 땅볼을 치고 만다. 이후 덕수고 투수 이종호가 공을 잡지 못하는 실책을 범하며 다시 상황이 반전된다. 박용택은 2루 도루에 성공하고, 다음 타자 정의윤까지 볼넷으로 출루한다. 정윤진 덕수고 감독은 급격히 흔들리는 이종호를 다독이기 위해 마운드로 걸어간다.

마운드에서 나누는 감독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경기 중계와 달리, ‘최강야구’에선 “긴장을 많이 했잖아. (아까) 못 잡은 건 잊어버려”, “박용택 선배도 3루 도루는 못할 거란 말이야. 딱 홈에만 투구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선배들 의식해서 하지 말라니까”라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려준다. 이후 이종호는 다음 타자인 이홍구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한숨 돌린다. 1회가 끝난 직후 정 감독은 덕아웃에서 선수들에게 “너희가 긴장하는 거 충분히 이해해”라며 “대선배가 아니라 충암고 애들, 서울고 애들이야. 너희와 똑같은 학년 선수들이니까 긴장하지 마. 감독님 얘기 들어줘야 해”라고 다독인다.

→ 단순히 실책과 도루, 폭투에 이은 삼진 등 기록만 보면 결국 별 일 없이 지나간 1회다. 하지만 실제 경기는 다르다.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경기 흐름을 끊어주지 않았으면, 투수의 긴장이 풀리지 않았으면 완전히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최강야구’는 경기 중계에선 추측만 할 뿐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모르는 그 상황을 선명하게 포착해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했다.

JTBC ‘최강야구’ 캡처

교감하고 존중하는 선수들

정윤진 덕수고 감독은 경기 전 사전 인터뷰에서 최강 몬스터즈를 상대로 이길 확률이 80%라고 자신했다. 이어진 도발을 영상으로 지켜보던 최강 몬스터즈 선수들은 굳어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도발로 시작된 차가운 분위기는 치열한 경기로 이어졌다. 덕수고는 한 점을 내기 위해 만루 상황에서도 번트 작전을 시도했고, 최강 몬스터즈는 도루와 태그업 등 끊임없이 주루 플레이를 펼쳤다.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모습이 방송에 고스란히 담겼다.

해설진이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열기가 오른 경기가 제작진이 원했던 기획 의도라면, 상대팀을 존중하고 교감하며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는 장면은 은퇴한 선수들이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온 이유에 가깝다. 주자로 1루에 진출한 박용택은 “어떻게 해야 잘 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덕수고 1루수 선수에게 “연습 많이 해야지. 고등학생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고 과정이 중요한 거야”라고 말한다. 시속 150㎞대 공을 뿌리는 덕수고 투수 심준석의 투구를 본 최강 몬스터즈 선수들은 “총알이라니까요, 총알”이라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유희관의 초저속 커브를 처음 본 충암고 선수들은 “와, 스피드건에 (구속이) 안 찍힌다”, “이걸 실물로 보다니”라며 혀를 내두른다.

→ 어떻게든 상대팀을 이기려는 진지한 태도는 스포츠에서 당연한 덕목이고 팬들이 모이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전쟁 같은 세계 안에도 순수하게 그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 존재한다. ‘최강야구’는 승부에 전념하는 선수뿐 아니라, 스포츠의 재미있는 순간을 함께 즐기고 나누는 한 명의 인간에도 주목한다. 그것이야 말로 스포츠의 재미를 그대로 가져오는 걸 넘어, 예능 프로그램이 찾아내야 했을 스포츠의 매력이지 않을까.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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