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을수록 빠져드는 ‘안나’의 상징들

곱씹을수록 빠져드는 ‘안나’의 상징들

기사승인 2022-07-08 06:00:27
볼수록 빠져든다. 거짓말로 인생이 달라지는 유미(수지)의 이야기. 쿠팡플레이 ‘안나’는 흥미로운 줄거리와 배우 연기도 좋지만, 세세한 연출을 보는 재미가 큰 드라마다. ‘안나’에 심어진 은유들은 유미의 심리를 함축해 보여주고, 극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다음은 ‘안나’의 세계를 보다 깊게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상징들이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 예고편 영상 캡처

욕망의 상징, 구두

구두는 유미의 야망과 욕망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메타포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유미는 마레에서 일을 시작하고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현주(정은채) 방에서 옷가지를 챙기던 유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굽 높은 구두에 시선을 빼앗긴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그는 이내 구두를 신고 거울 속 자신을 이리저리 살핀다. 단화만 신던 그가 구두에 올라서며 억눌렀던 욕망을 드러낸 장면이다. 이후 현주의 여권과 학위증을 훔쳐 달아난 유미는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며 새로운 신분에 올라탄다. 이안나 교수로 살아가던 유미는 몇 년 뒤 현주를 맞닥뜨리고 다시 구두에서 내려온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 예고편 영상 캡처

성공의 척도, 경복궁

유미에게 경복궁은 성공의 바로미터다. 유미가 마레에서 일하던 시절, 현주 방에선 경복궁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방에 들어간 유미는 창문 너머로 훤히 보이는 경복궁 전경에 탄성을 내뱉었다. 이후 안나로 살기 시작한 유미는 경복궁 끄트머리가 보이는 집을 구한다. “그래도 경복궁이 보이긴 하니까.” 중개사의 말이 끝나고 유미의 눈에 들어오는 경복궁 끝자락은, 그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 예고편 영상 캡처

유미와 현주, 계단과 엘리베이터

이안나로 살던 유미는 현주와 같은 아파트에서 조우한다. 그때부터 유미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유미에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진짜 안나’ 현주는 껄끄러운 대상이다. 유미는 끝없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절대 주저앉지 않는다. 그의 하이힐은 단화로 바뀌고, 때때로는 맨발이 된다. 넘어질 듯 위태롭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유미는 모든 사실을 알고 찾아온 현주를 집안에 들인다. 높은 굽을 신은 현주는 유미를 내려다보며 힐난하고 화를 낸다. 유미는 실내화도 신지 못한 채 그의 앞에서 고개 숙이고 무릎 꿇는다. 그런 유미에게 현주는 말한다. “너 따위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만한 그런 사정은 없어.” “앞으로도 계속 계단으로 다녀.” 그 후부터 쭉 계단을 이용하던 유미는 현주의 신변에 변화가 생긴 듯한 정황을 포착하자마자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 예고편 영상 캡처

넘어설 수 없는 격차, 23층과 24층

유미가 현주와 마주치던 날, 유미는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 올라 23층 버튼을 눌렀다. 한 층 올라 1층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현주가 들어선다. 그는 유미보다 한 층 높은 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미의 집보다 한 층 높은 24층 버튼을 누른다. 성공한 사업가 남편과 이안나 교수로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던 유미였지만, 그는 끝내 현주의 위로는 올라설 수 없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 스틸컷

허영의 상징, 옷

유미는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집착한다. 가짜 대학생으로 살던 때부터 옷과 화장품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보내주는 등록금으로 재수학원비를 내고 남는 돈으로 옷을 샀다. 두 달 치 하숙비를 내지 않고 잠적했을 때, 발 디딜 틈 없이 방을 가득 메운 옷가지를 보고 하숙집 주인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가짜 안나의 삶에 발을 들였을 때도 그는 옷을 잔뜩 사 모았다. 동대문 상가에서 명품 브랜드의 가품 옷을 사 입던 그는 부와 명예를 얻기 시작하며 보이는 것에 더욱 신경 쓴다. 결혼식에서 입은 웨딩드레스도 호화롭다. 대본에는 ‘여왕 같은 유미’로 묘사됐다. 수지는 유미의 허영을 표현하기 위해 제일 화려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그가 유미를 연기하며 입은 옷은 약 150벌이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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