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에 재하청…건설·조선업, 위험의 외주화 ‘만연’

하청에 재하청…건설·조선업, 위험의 외주화 ‘만연’

기사승인 2022-07-23 06:30:08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51일째인 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 인근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 노사 간 협상이 파업 51일만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하지만 조선업 내부에 깊게 뿌린 박힌 다단계식 하청 구조 문제는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면서 노동자 임금 체계는 불투명하고 위험의 외주화로 안전 문제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이같은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업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하도급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동참사로 불거진 건설업의 하청 구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 불법 하도급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A기업에게 하청을 주고, A기업은 다시 B와 C기업에게 불법재하청을 줬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재개발의 철거 공사비는 최초 50억원에서 11억원으로, 다시 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구조 특성상 재하청 문화는 당연하다시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건설 규모가 큰 사업일수록 더욱 그렇다”며 “가장 큰 이유는 공사기간과 공사비 절약이다. 최소한의 비용을 투입해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이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도 결국 이같은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6년도 조선업 위기를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등이 일어났고 피해는 결국 하청의 가장 끝단에 서 있는 노동자들이 떠안게 된 것”이라며 “삭감된 임금 복원 등이 사태의 쟁점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청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51일째인 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의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에서 31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업에서도 다단계 하청 구조

조선업 하도급도 비슷하다. 원청 조선소에서 1차로 사내하청 혹은 사외협력업체를 통해 하청 계약을 맺는다. 계약업체를 못 구하거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경우 물량팀을 통해 인력을 조달받아 하청을 맺는다.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며 다단계 구조가 됐다.

대형 조선소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사내하청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비용절감, 책임회피, 정규직 노조의 무력화 등이 복합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전체 20% 수준이던 사내하청은 2002년 들어 전체 50%로 증가했고, 2015년엔 하청 노동자가 원청의 4배 가까이에 달했다. 

조선업에 종사하는 5년차 노동자는 “1990년대 후반 대내외적 위기를 겪으면서 원청은 하청업체들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다단계 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현재는 다단계와 같은 하청구조 탓에 수십년 경력을 가진 숙련공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 조선소 안에는 다양한 임금구조가 존재하고 있었다. 같은 근무를 하고 있더라도 월급제, 시급제(직시급, 물량만큼 지급, 일당) 등으로 임금이 나뉘어 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재하도급은 원하청간 도급 계약서상 금지되어 있지만 조선소 현장에서는 물량팀과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편법적 재하도급이 운영 중”이라며 “독립적인 사업을 할 역량이 안되는 하청업체들이 원청으로부터 받는 기성금 이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인력을 파견하고 중간착취를 하는 것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0년 10월 대우중공업의 구조조정과 한국산업은행의 출자 전환에 따라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됐다. 현재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55.7%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결대상 자회사로 관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청구조, 위험의 외주화

이같은 하청 구조는 단순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안전과도 연관이 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현황’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올해 사망사고 34건으로 인해 41명의 노동자가 숨을 거뒀다.

사고는 대부분 하청노동자들에게 일어났다. 조선업의 산업재해 사고 사망 노동자는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88명이 발생했다. 2018년 한 해를 제외하면 매년 1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숨진 88명의 노동자 가운데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가 68명으로, 전체 사망 산재의 77.3%가 협력업체 노동자 중에서 발생했다. 위험의 외주화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우조선해양 파업의 경우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 해당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은 ‘파업으로 정상적 영업활동이 어려워 파산을 검토할 수 있다’, ‘노사 간 문제는 관여할 수 없다’ 등의 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누구는 0.3평 철제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뒀고 누군가는 20m 상공에 자신의 몸을 띄웠다”며 “이들은 더 이상 희생과 착취에 기반한 후진적 고용구조와 산업구조, 노동3권의 공백상태를 용인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2018년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는 조선업 중대재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고 밝혔다”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도급 금지 작업, 도급에 대한 고용노동부 장관 승인이 필요한 작업, 승인받은 도급 작업에 대한 하도급 금지 조항이 있다. 이를 참고해 조선업을 도급 금지 혹은 승인 대상 작업에 포함시키고 재하도급을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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