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안이 학부모와 교육계,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사실상 철회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만 6세(한국나이 8세)도 학교 적응이 어려운데 그보다 더 어린 만 5세 입학이 가당키나 하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만 5세 초등 취학 반대 집회에서 기자가 만난 학부모들 대다수는 이미 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켜 본 경험이 있었다. 만 5세 자녀의 손을 잡고 집회 현장에 나온 학부모 A씨는 먼저 초등학교에 보낸 첫째 아이를 떠올리며 “초등 1학년 때 아이가 학교에서 40분을 앉아있는 게 쉽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2019년생 자녀를 포함해 3명의 아이를 뒀다는 학부모 B씨는 “초등 1학년 아이들은 식판이 무거워서 혼자 들지도 못한다고 한다”며 “만 6세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많은 학부모는 어린이집·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누리과정이 초등학교 교육과정과의 연계를 고려해 개발됐으나 여전히 전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다른 1학년들은 잘 작응하고 있나” “1학년 적응 기간은 대체 언제까지냐” “스트레스를 받는지 배가 아프다며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 “생일이 느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라 학교 적응이 쉽지 않다” 등 초등 1학년에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들의 걱정 섞인 글이 쏟아진다.
서울의 한 초등교사 C씨는 “1학년의 경우 초등학교 적응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1학년은 아직 유아교육에 가까워 (초등 수업에) 힘든 부분이 좀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치원·어린이집과 초등학교의 교육 환경이 제대로 연결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만 5세 취학 논란은 교육부가 사실상 정책 폐기 의사를 밝혀 일단락했지만, 유아·초등 연계 교육 강화에 대한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선 과정에서 만 3~5세 누리과정과 초등학교 교육과정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초등학교로 입학하는 전이 시기는 아동의 발달과업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기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초등학교 전이과정에서 나타나는 아동의 행복감 변화유형: 취학 전 아동 및 부모 특성을 중심으로(2018)’는 “초등 1학년 아동의 경우 놀이 중심의 보육 및 교육 환경에서 구조적이고 학업중심적인 초등학교 과정으로 전이하며 학업에 대한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4~2015년 1480명의 아동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전이 과정을 거치며 전체적인 행복감 수준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생활은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운영되던 놀이 중심 교육 과정과는 다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유치원·어린이집과 초등학교의 연계 현황과 강화 방안(2015)’에 따르면 만 5세 교사와 초등 1학년 교사 모두 놀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업에 매일 놀이를 적용한다”고 만 5세 교사는 55.0%가 응답한 반면 초등 1학년 교사는 12.3%에 불과했다. 초등 1학년 교사의 경우 1주일에 1~3회 적용한다는 응답이 46.9%로 가장 높았다. 초등 입학 전 놀이 중심의 교육을 받던 아이들 입장에선 입학 후 교사 중심 수업으로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셈이다.
때문에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보통합이나 유아 무상교육, 유아학교 등의 주장도 이러한 맥락이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 박다솜 위원장은 “아이들이 최대한 새로운 기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학교급마다 교육과정이 다르고 교육환경, 방법 등이 많이 달라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보완해 개선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디자인네트워크 산하 유아교육디자인연구소 김연진 소장은 “영유아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 연령 간의 연결과 기관의 연속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3~5세 발달을 고려한 현재의 놀이중심교육을 안착시키고, 유아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인성·관계중심의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을 어떻게 연결할 지 고민하는 것이 국가의 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나아 갈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