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해주세요”…살기 위해 연락 돌리는 환자들

“헌혈 해주세요”…살기 위해 연락 돌리는 환자들

‘지정헌혈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서 어려움 호소
백혈병으로 입원하자마자 병원서 ‘지정헌혈’ 권유

기사승인 2022-08-17 15:46:20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 이성구 씨가 17일 ‘지정헌혈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지정헌혈 문제점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백혈병을 진단 받자마자 혈소판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해야 하는 환자들이 있다. 혈액을 직접 구하지 못하면 수혈을 못 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이성구씨(31·남)가 17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지정헌혈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자신과 같은 환자들을 대변해 ‘환자와 환자가족이 직접 헌혈자를 구해야하는 어려움’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이씨는 2021년 11월22일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고 약 6개월 동안 4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당시 그는 병원 입원기간 동안 총 19팩의 혈소판을 수혈 받았다. 그 중 9개는 직접 헌혈자를 구해(지정헌혈을 통해) 수혈 받았다. 

이씨는 “백혈병을 진단받자마자 질병 특성상 치료가 급하게 필요하다며 병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입원했다. 입원 당일 안내를 받고 많은 검사를 하며 정신없는 와중에, 병원에서는 중요한 내용이라며 ‘지정헌혈’에 대해 안내했다”며 “백혈병 치료 중 필요한 혈소판의 수급이 잘 안 될 수가 있으니 미리 혈소판 헌혈을 해줄 수 있는 지인들이 있으면 부탁하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백혈병을 진단받고 하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인들에게 연락해 같은 혈액형인지 묻고 병원에서의 내용을 전달하며 부탁했다”며 “스스로 병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태에서 지인들에게 피를 수혈해 달라고 연락하면서 참 많이 힘들고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낮은 혈소판 수치로 출혈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볼일을 보다가도 코피가 나고, 몸의 내부에서 출혈이 발생하는데도 쉽사리 지혈되지 않기도 했다. 

이때 빠르게 혈소판을 수혈 받아야만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혈소판 공급에 차질이 생겨 수혈 스케줄이 밀리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병원에서도 혈소판이 언제 수급되지는 지 확실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더 많은 지인들에게 연락해 지정헌혈을 부탁했다. 병원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날짜에 헌혈이 가능한 지인들을 구해야 하는데, 막상 가도 조건이 맞지 않아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지인에게 헌혈을 부탁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환자들이 혈액에 대한 걱정을 덜고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이 개선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는 이성구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정헌혈’을 직접 구해야 하는 대부분의 백혈병 환자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지정헌혈 경험에 대한 환우 설문조사.   SNS 캡처

이성구 씨가 자신이 포함된 SNS 채팅방 속 45명의 환우에게 ‘지정헌혈 경험’ 관련 투표를 진행한 결과, 31명이 ‘스스로 지정헌혈자를 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지정헌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5명밖에 되지 않았다.

실제 지정헌혈을 경험했던 헌혈자도 이 같은 현실에 깊이 공감했다. 

헌혈자 목소리를 대변한 이기연씨(40·남)는 “최근 들어 혈액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헌혈조건이 까다로워 구하기 힘들다 보니 지정헌혈로 충당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커뮤니티 상에는 투병에 집중해야할 환자나 보호자가 ‘지정헌혈’을 구하러다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헌혈이 활성화돼야 한다. 즉, 직장인들이 평일 퇴근 이후에도 헌혈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영시간을 늘리고, 지방 혈액원을 구축해야 한다”며 “정부와 혈액원 등에서 노력해서 헌혈자가 언제든 헌혈에 참여할 수 있고 환자는 필요한 경우 안정적으로 혈액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헌혈 참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가 많다고 들었다. 2020년부터 국정감사 등 보건복지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번 토론회에서 논의된 사안들을 후반기 보건복지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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