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싫은 소리 계속 들으면 귀에서 피날까 [그랬구나]

듣기 싫은 소리 계속 들으면 귀에서 피날까 [그랬구나]

[그랬구나]는 건강한 생활을 위한 일상 속 궁금증을 다루는 코너입니다

기사승인 2022-08-27 06:00:09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말 많은 사람, 일명 투머치토커(TMT)로부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들을 때나, 듣기 싫은 소리를 오랫동안 들을 때 보통 ‘귀에서 피 난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드라마, 예능에서도 “귀에서 피 난다”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실제 듣는 것만으로도 피가 날 수 있는 걸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를 들어야 되는 걸까. 이 외에도 일상 속 소리가 귀에 주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국내 ‘귀’ 전문가 △구자원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안용휘 노원을지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이호영 고려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임상강사 △서지원 성균관의대삼성창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와 이야기 나눠봤다.

“청력과 관련해 궁금한 점들이 있습니다. 요즘 자는 동안 매일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을 듣는데요, 귀에는 괜찮을까요?”

서 교수: ASMR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생생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이어폰을 사용하고, ASMR 전용 이어폰까지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SMR을 듣기 위해 장시간 이어폰을 착용하고, 큰 소리로 듣다보면 청각 세포가 손상되어 소음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통상 80dB(데시벨)을 넘기면 소음에 해당되며, 장시간 노출될 경우 청력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이나 버스가 지나갈 때 나는 소음이 80dB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구 교수: ASMR이 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조사된 정확한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통해 편안한 수면을 유도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음량이 일정 수준 이상 커진다면 귀에 나쁜 효과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자는 동안 ASMR을 듣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어폰 보다는 스피커가 좋고, 소리의 크기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하는 것이 귀의 입장에서는 더 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이어폰 중에서도 노이즈 캔슬링 가능한 무선이어폰이 청력에 더 안 좋을까요?”

안 교수: 노이즈 캔슬링 자체가 귀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보행 중에는 주변의 소음을 듣지 못해서 교통사고와 같은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또 무선 이어폰을 장시간 사용하면 소음성 난청과 이명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최대 볼륨의 60% 미만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1시간 사용 후 10~20분 정도 귀에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임상강사: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경우 주변 소음에 반대되는 음향 신호를 방출해 주변 소음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사용 시 소음 환경에서 주변 소음을 상쇄시켜주기 때문에 이어폰 음량을 줄여서 사용할 수 있게 돼 청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사용 시에 큰 음량으로 이어폰을 사용하게 된다는 보고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소머즈란 1970년대 유명했던 외화드라마 중 초월적인 청력을 갖고 있는 주인공 이름으로, 이후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을 호칭할 때 사용되고 있다. 국내 드라마 ‘보이스’ 여주인공 강권주(배우 이하나)도 소머즈의 한 예시로 볼 수 있다.   드라마 캡처


“매우 잘 듣는 사람이나 절대 청력을 가진 사람을 ‘소머즈’라 부르는데, 이처럼 청각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실제 있나요?”


안 교수: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작은 소리를 잘 듣는 것이 반드시 청각의 뛰어난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사회는 서로 대화하는 것을 잘 듣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에 소리의 의미를 잘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됩니다.

구 교수: 상반고리관 피열 증후군(superior semicircular canal dehiscence syndrome) 환자에서는 골도 청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아주 작은 소리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병적으로 청력의 역치가 낮아지는 사람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임상강사: 순음 청력 검사의 기준이 되는 ‘0dB HL’은 정상인 젊은이들이 귀로 감지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의 평균 역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순음 청력 검사 상, 역치가 0 dB HL 보다 작게 나온다면 정상 젊은이들이 평균적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더 작은 크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젊은 성인이나 미성년자에게서 종종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서 교수: 양쪽 귀의 청력이 모두 괜찮은 경우, 귀를 기울이고 집중을 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누는 대화를 조금 더 잘 들을 수 있기는 하지만, 수백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하는 대화는 들을 수 없습니다. 대신 최근 날로 특수 목적의 의족, 의수, 의안 뿐 아니라 웨어러블 기기 등을 통해 신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증강 인간 기술을 활발히 연구 중이기 때문에 특수한 장치들을 이용한다면 소머즈와 같은 뛰어난 청각 능력을 경험해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반면에 젊은 나이에도 유독 남들보다 말을 잘 못 듣고 계속 다시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병원 진료 받아봐야 하나요?”

안 교수: 청력이 약간 떨어진 경우에는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자주 놓치게 되는 경우에는 이비인후과에서 정확한 청력 검사를 받아보길 권장 드립니다.

구 교수: 태어날 때부터 1000명 중 1명은 난청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젊은 나이라고 안심하는 것은 좋지 않고,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서 교수: 소음성 난청은 단순히 큰 소리, 예를 들면 총성이나 폭발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에만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느 정도 충분한 강도의 소음에 일정기간 노출되면 누구나 생길 수 있고 감수성도 개인차가 있습니다. 하루종일 이어폰을 착용하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듣거나 통화를 할 경우에도 청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고음역 난청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청력이 나쁘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반드시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고 청력을 확인해봐야 합니다.

드라마 미남당 속 한 장면. 극 중 검사가 몇 시간 동안 쉴새 없이 말을 하자 미결수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드라마 캡처

 


“‘귀에서 피 난다’는 말,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한가요? 어느 정도로 들어야 귀에서 피가 날 수 있을까요?”


이 임상강사: 싫은 소리를 듣거나 장시간 많은 말을 듣는다고 귀에서 피가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소음 노출은 영구적인 청력 장애의 가장 흔한 원인 중의 하나이며 장시간 지속적인 소음에 노출되는 경우, 휴식기를 갖는 간헐적 소음 노출보다 청각에 더 많은 손상이 발생합니다. 소음성 난청은 소음의 주파수, 강도, 노출 시간 및 개인의 감수성 등의 요인에 따라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8시간 기준으로 85dB 이하에서는 위험도가 낮고, 85dB 이상에서는 현저하게 증가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구 교수·안 교수: 의학적으로 귀에서 피가 나려면 심한 상처가 나거나 염증이 아주 심해야 가능합니다. 소리 자체로 귀에서 피가 나게 하는 것은 고막을 갑자기 터트릴 정도로 엄청나게 큰 소리라면 가능합니다. 일반적인 큰 소음이나 사격 소리로 고막이 터지지는 않고,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가까운 곳에서 듣는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 당연히 생명이 위태로울 겁니다. 소리의 크기가 100~120dB(데시벨)이 넘으면 귀에 통증을 느끼고, 140~150dB이면 고막 천공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 교수: 장시간 싫은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귀에서 피가 날 수는 없지만, 외이도 내의 공기압을 변화시켜 고막 천공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소리에 노출되는 경우에는 귀에서 피가 날 수 있습니다. 또한 귀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중이염 등 귀 감염 질환이 생겼을 때, 귀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손으로 귀를 맞거나, 수면 위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히는 경우 등의 상황에서도 피는 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은 ‘귀에서 피 난다’라는 말을 안 쓰시나요?”

안 교수: 사실 “귀에서 피 난다”는 표현은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만, 강의를 하루 종일 들었을 때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은 종종 합니다. 귀가 간지러울 때면 “누가 내 얘기를 하나?” 라고는 가끔 생각합니다.

이 임상강사: 하하. 전공의 때 수술실 등에서 교수님께 혼나거나 하면 우스갯소리로 ‘오늘 잔소리를 너무 들어서 귀에서 피 난다’라고 서로 말하곤 합니다. 

서 교수: 저도 귀에 피 나겠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는데요. 제가 자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진짜 귀에서 피 나는 환자가 올까봐서요(웃음).

그랬구나. 진짜 피가 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이비인후과 의사도 싫은 말 계속 들으면 ‘귀에서 피 난다’는 느낌은 받는다. 말 많이 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장시간 큰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청력 손실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하자.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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