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바이오 산업에 대한 행정명령이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바이오 산업 분야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행정명령을 냈다. 기술 개발, 제품화, 생산 등에 필요한 인적·물적 인프라를 자국화한다는 것이 행정명령의 취지다. 바이든 행정부는 일자리 창출, 바이오의약품 공급망 안정화, 가격 경쟁력 강화 등을 예상 효과로 제시했다.
해외 의존도 완화 역시 행정명령의 주요 목표다. 그동안 미국은 원료의약품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 왔다. 생산 역시 국외에 거점을 두고 인건비 절감을 추구했다. 전 세계적으로 원료의약품 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중국과 무역갈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국가간 산업 기밀 유출 이슈가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필요 불가결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미국 정부의 방침에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계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 현지에 진출하거나, 미국 시장에 수출 중인 바이오 의약품에서 적지 않은 매출을 벌어들이고 있는 기업들은 행정명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이후 국내 기업의 미국 기업 위탁생산(CMO) 실적도 상당했다. 대표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 백신을, SK바이오사이언스는 노바백스의 백신 위탁생산을 수주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업계는 이미 지난해부터 위기감이 상존했다. 바이든 행정부의가 이른바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자국 기업에게 보조금 지원, 세제 혜택 등을 적용하는 정책 기조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업계는 이미 타격이 가시화했다.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하자 우리나라의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가 4%가량 하락했다. IRA에는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중고차는 최대 4000달러(한화 약 524만원), 신차는 최대 7500달러(약 983만원)의 세액 공제를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내 바이오 산업에 미칠 여파는 예단할 수 없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와 달리 바이오 의약품은 완전히 시장에 맡겨진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적 논리만으로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을 제시한다면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을 담보로 잡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바이오 행정명령은 해외 기업에 노골적으로 배타적인 IRA과는 기조가 다르다. 미국 내 바이오 생산 및 연구개발 역량을 제고하고, 국제 공조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즉, 해외 기업에게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미국 기업과 협력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방국으로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정윤택 제약산업연구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은 품질이 높고 가격이 저렴해 미국에서도 상당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아무리 자국 기업을 챙기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해도,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런 제품의 공급을 막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 정부가 우방국으로서 국내 기업의 미국 진출을 독려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미국이 수입했던 중국산 원료의약품을 우리나라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원료의약품 생산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상황을 신중히 지켜보며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고안할 방침이다. 지민정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융합산업과 서기관은 “아직까지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인 정책계획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행정명령의 내용을 보면 우방국과의 연구개발 협력과 가치공유 기회를 확대한다는 논조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미국이 자국 내 생산설비를 유치하기 위해 바이오 기업 대상 세제 혜택이나 투자 계획을 내놓는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국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