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울려 퍼지는 휘파람, 파열음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손톱, 손을 잡고 원 모양으로 선 소녀들…. 공포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음산한 분위기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 주인공은 그룹 레드벨벳 멤버 슬기다. 그는 4일 오후 6시 공개하는 첫 미니음반 ‘28 리즌스’(28 Reasons)에서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 이미지를 벗어 던진다. 슬기가 신보에서 쓴 가면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마녀. 이날 온라인으로 만난 슬기는 “새 음반을 작업하며 내게서 서늘한 면모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착하지 않은 백설공주, 나쁘지 않은 여왕”
‘28 리즌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중성이다. 슬기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를 내세워 감정의 앞면과 뒷면을 노래한다. 음반 콘셉트가 담긴 티저 사진은 영국에서 촬영했다. 슬기는 “동화 ‘백설공주’ 속 백설공주와 왕비에서 영감을 얻은 사진”이라며 “음반 콘셉트가 선과 악의 공존인 만큼 너무 착하지만은 않은 백설공주, 너무 나쁘지만은 않은 왕비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슬기는 이번 음반에 직접 작사한 ‘데드 맨 러닝’(Dead Man Runnin’), 래퍼 비오가 피처링한 ‘배드 보이 새드 걸’(Bad Boy Sad Girl) 등 6곡을 추려 담았다.
“사랑이란 그래. 비러 앤 스위트”
타이틀곡 ‘28 리즌스’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과 긴 시간 호흡을 맞춘 유영진 프로듀서가 작사·작곡·편곡한 노래다. 슬기는 “좋아하는 상대를 향한 순수한 관심과 짓궂은 장난기를 모두 표현한 곡”이라고 귀띔했다. “사랑이란 그래, 비러 앤 스위트(Bitter and sweet)” “널 망치고 구원해” 등 매혹적이면서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가사가 특징이다. 슬기는 “내 목소리는 포근한 느낌이 강해서 어떻게 곡을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덤덤하고 무심하게, 얘기하듯 부르면 좋겠다는 유영진 프로듀서 조언에 따라 수정을 거듭하며 노래를 완성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28 리즌스’를 들었을 때 퍼포먼스가 또렷하게 그려진데다가 보컬도 들려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표현하는 첫 곡으로 제일 좋다고 생각해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했다”고 했다.
“어떤 콘셉트든 슬기답게”
슬기는 먼저 솔로 음반을 낸 웬디와 조이 등 같은 팀 동료들의 응원 속에 올해 초부터 ‘28 리즌스’를 준비했다. 평소 무덤덤한 줄 알았던 자신이 예민해졌다고 느꼈을 정도로 음반 작업은 고됐다. 노래와 춤 실력 모두 수준급이라는 뜻의 ‘올 라운더’로 평가받는 그는 “이런 수식어를 잃고 싶지 않아 더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연습과 노력뿐”이라고 강조했다. 레드벨벳과 유닛 그룹 레드벨벳-아이린&슬기, 프로젝트 그룹 갓 더 비트 등 여러 팀에서 활동하며 쌓은 경험도 도움이 됐다. 슬기는 “다양한 경험들 덕분에 어떤 콘셉트든 재밌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다”며 “하나의 색깔만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콘셉트를 슬기답게 소화해서 보여주고 싶다. 앞날이 기대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게 목표”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